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반짝 Jun 25. 2024

예수님의 십자가

예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서웠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잔인한 일을 당했는데 너는 뭘 하고 있느냐고 예수님이 나를 다그칠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너 때문에 이런 일을 겪었다고 나를 탓할 것만 같았다. 교회에서는 왜 자꾸 내가 알지도 못했던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죄책감을 내게 불어넣었던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왜 그렇게 충격적으로 잔인했을까? 나는 예수님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따뜻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아 너무나 무서웠었다.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갔더니 갑자기 저녁 집회 시간에 강사가 뜬금없이 호통을 치면서 모두에게 팔을 십자가처럼 좌우로 펴고 버티라고 했다. 팔이 아파서 내리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해서 그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힘들었는데 너희들은 그것도 못 참아? 니들이 엄마 말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죄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거야!” 나는 속으로 ’강사 자기가 어릴 때 엄마 말 지지리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했나 보지, 왜 멀쩡한 나한테 벌을 세우고 난리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면 그걸로 끝이지 왜 내가 또 예수님을 대신해서 팔 아프게 벌을 받아야 되는데? 고통 돌려 막기도 아니고 뭐야?

나는 원래 고등학생 때 해병대 수련회를 가서도 애초에 내가 이 사람들한테 얼차려를 받을 이유가 없는데 강제로 끌려왔기 때문에 구호를 안 외치는 사람이 있다며 pt체조를 끝없이 시키는데도 입에 흙먼지가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구호를 끝까지 안 외칠 정도로 납득이 안 가는 일은 끝까지 거부하는 성격이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시골이라 융통성이 없어서 고3 때도 수능 전날까지 무식하게 전 과목 수업을 하고 학교 수업 수준은 낮은데 잘하는 애들은 따로 보충수업을, 더 잘하는 애들은 또 추가 보충수업을 듣게 하는 학교였다. 수능을 준비하려면 자습시간이 필요한데 도저히 할 시간이 없어서 공부 잘하는 애들 몇 명이랑 얘기해서 같이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학교 수업을 안 듣고 기숙사 자습실에서 자습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자는 단발머리, 남자는 반삭머리에 무채색 양말만 신게 하는 학교에서 나의 요구는 신성한 선생님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너무나도 건방진 반란과도 같은 행동이었고 같은 동기들에게도 눈총을 받기 좋은 행동이었다. 다들 우리가 전교 1,2등이니까 그런 특권을 행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원래 그렇게 결단력이 강한 성격이 못 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성격이다. 다만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대학을 가려면 최저등급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놈의 학교에 최저등급이 필요한 학생들은 얼마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학교의 희생자가 될 수는 없었다. ㅜㅜ 학교를 위해 서울대 원서를 써준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전교 1등이 서울대 원서를 쓰지 않겠다고 하니 선생님들이 노발대발하며 이것은 학교와 우리 담임선생님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나를 중학교 때부터 봐오신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 내게 서울대 진학을 강요하지 않았고 수업도 빠질 수 있게 도와주셨다. 당시에 그런 선생님은 없었는데 신재영선생님이 중2 때부터 고3까지 나의 수학 공부와 담임선생님을 맡아주셨던 것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선생님들이 입학 때부터 내게 전 과목 1등급을 받으라며 그렇게 다그치고 내게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온갖 상처를 주었던 것도 다 선생님들과 학교의 실적을 위해서였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는 만일 한의대를 다 떨어지고 서울대만 붙으면 인생 진로가 강제로 서울대 입학으로 틀어져버리는 상황인데 선생님들은 내 인생보다도 학교와 선생님들의 실적을 중시했다.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적어도 내가 가고 싶은 학과를 지원했지만 선생님들은 확실한 합격을 위해 가장 낮은 과인 간호학과를 지원하기를 원했다. 서울대 간호학과는 교수가 되러 가는 곳이고 나중에 의사랑 결혼을 할 수 있다나 뭐라나..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하고 이용만 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켜야만 했다. 내가 희생자가 되게끔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왜 내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은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한 모든 희생을 치르셨는데 내가 왜 그 권리를 남의 헛소리에 빼앗겨야 하는가? 지들이 뭔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권위에 도전하는가? 내가 왜 그런 말들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그럴 가치가 없는데?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 그 사람들 덕에 살아온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 사람들 없이도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쓸데없는 말과 필요하지 않은 조언을 하면서 꼴값을 떠는 사람들을 나는 딱 질색한다. 나는 진짜 권위와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 눈에서는 끝없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치르신 예수님이 내게 “은영아,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옥에라도 갈 수 있어.” 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왜 그 십자가와 예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나는 이 은혜와 사랑을 절대 놓치지 않고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부끄러움, 죄책감, 악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작가의 이전글 아이고 미안해라 ㅠ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