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섣불리 평가하는 것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한다.
이번에 또 아빠의 타인을 향한 칼 같은 비판할 점을 보고 섣불리 단정 지어버리는 문제 때문에 싸웠다.
아빠는 본인이 나를 그렇게 평가했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면서 정말 한 점의 티끌만큼의 잘못도 하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노력하는데도 나를 끝까지 믿어주지 않는 차가운 시선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다.
나는 오해가 생기는 것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싫어한다.
타인이 나를 섣불리 평가하고 오해를 한다고 해서, 나마저도 그 사람을 섣부르게 평가하고 단정 지어버리면 그 관계가 어떻게 될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나만은 다른 사람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하고 오해가 있을 뿐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며 나를 피해버리는 아빠에 대해 매우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끝까지 잘못된 점을 얘기했다. 과거 아빠는 내가 죽을 위기에 처했으니 제발 구해달라는 처절한 호소를 다른 중요한 일들이 있다며 끝까지 외면해 버렸었다. 그래서 오늘 나도 아빠에게는 중요한 사람이고, 지금 하는 대화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아마도 아빠가 그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본인 스스로의 사람을 믿지 못하는 상처 때문에 현재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지, 딸이 이렇게 매섭게 지적을 한다 해도 언젠가는 받아들이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큰 실수와 잘못과 악을 행하더라도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못해 놓고 은혜를 구하는 것이 뻔뻔하게 보이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자세이다.
우리가 훌륭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허물을 보더라도 다소 인간적인 부족함이 있을 뿐이라고 이해하듯이, 아무리 악한 사람을 보더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큰 허물도 작은 인간적인 부족함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보다 나았을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본인의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만 하면 모든 죄는 사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고치면 해결되는 문제에 대해 그렇게 쪼잔하게 굴 것 없다. 진짜 고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는 내게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