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부끄러움이라 생각한다. 부끄러움은 타인을 향한 초점을 스스로에게 돌리게 만들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잘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끄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자아성찰이 가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요새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당당하다고 여기는 흐름이 강해 보여 안타깝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떳떳하지 못하다. 본인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내적인 자기 수치심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비난의 화살을 밖으로 쏘아대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고 강해 보인다.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사실이 너무도 수치스러워 도리어 뻔뻔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소통이 불가한 철면피가 되어버린다. 내가 옳고 선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타인을 향한 부정과 비난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내뿜어야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수치심을 회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연약함이나 아픈 상처를 후벼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수치심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건강한 부끄러움이 불건강한 수치심으로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부끄러움은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일차적인 감정이지만 수치심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평가, 판단이 가미되어 생겨난 이차적 감정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수치심을 가진 이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본인이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비참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 강해 보이지만 타인의 연약함을 포용하는 진정한 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큰 소리로 호통을 치다가도 정곡을 찔리면 헤헤 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에게선 인간 냄새가 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타인에게 본인의 수치심을 전가시키며 스스로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란 비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나는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