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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Apr 23. 2024

억울했던 일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컴퓨터 시간에 이것저것 자유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한 게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하노이의 탑'이라는 퍼즐게임이었는데, 10층 하노이의 탑을 이번 주까지 가장 적은 수의 움직임으로 다른 쪽으로 옮긴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경쟁을 싫어하고 불필요하게 나서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이 내 할 일이나 하고 있다가, 수업시간이 끝날 때쯤 친구들이 퍼즐을 푸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보아하니 수학적 규칙을 찾아내면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다음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곧 머릿속으로 10층 하노이의 탑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옮기는 규칙을 찾아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면 바로 퍼즐을 풀어서 다음날 컴퓨터 선생님께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가서 생각한 대로 탑을 옮기다가 처음에는 클릭을 하다가 실수로 놓쳐서 최소한의 횟수가 아닌 1이 더 많은 횟수로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치의 실수도 없게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완벽한 최소한의 횟수로 옮긴 하노이의 탑을 완성했다. 나는 그 화면을 캡처하여 다음 날 등교를 하자마자 컴퓨터 선생님에게 자랑스럽게 들고 가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를 받아 든 선생님의 표정이 그다지 별로 좋지가 않았다. 일단 알았으니 나중에 얘기하고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로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컴퓨터 시간이 되었다.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며 상을 주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 퍼즐을 제일 적은 수로 푼 사람한테 상을 준다고 했지? 그런데 어제 나한테 자신이 퍼즐을 풀었다고 하며 가져온 학생이 있었는데, 그건 완전히 컨닝이었다. 왜냐하면 걔가 탑의 원반을 옮긴 횟수가 정확히 이 탑을 최소한으로 옮길 수 있는 정답이랑 똑같았거든. 그건 분명히 인터넷에서 해답을 보고 똑같이 베끼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부정행위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2학년 ㅇㅇ이가 탑을 제일 적게 움직이고 옮겨서 가져왔거든. 그래서 그 애가 상을 받는 것이 맞다. 혹시나 자기가 부정행위를 해 놓고 다른 사람이 상을 받았다고 불평을 할까 봐 내가 얘기하는 거야. 너희들,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수가... 내가 퍼즐을 완벽하게 푸는 방법을 미리 풀고 옮겼으니까 정답이랑 똑같지, 어떻게 그게 컨닝의 증거가 된단 말인가? 심지어 나는 수학을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다. 내가 볼 땐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는데 이걸 푼 게 무슨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얼굴만 붉어질 뿐 아무 해명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삶이었다. 나는 억울한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해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억울하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해명을 하면 내가 잘난 척을 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워하는데 꼭 그 말이 맞는 것만 같고 내가 진짜 결백하고 억울한 사람이 맞는 것인지 전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오해를 받고 살아왔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극소수가 아니라.. 사실 인생을 통틀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교만이나 잘난 척, 위선으로 보일까 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 정말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어도 그걸 내가 밝히는 순간 나는 내가 잘했다고 자랑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세심하게 노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해는 점점 쌓여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해를 받으면 나는 정말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내가 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단 말인가? 그렇다면 정말 그게 사실이 아닐까? 내가 잘못한 걸까? 그런데 또 그렇게 아무리 생각을 해보려 해도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교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잘난 척하는 사람도 위선자도 아니다. 나는 위선을 싫어한다. 나는 내가 선하다고 스스로 속이는 위선자가 되느니 차라리 나쁜 사람이나 위선자로 오해를 받기를 선택해 버릴 정도로 나를 자랑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는 나를 지독히도 공격하는 수없이 많은 말들에 그냥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내가 미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냥 남들에게 나를 해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진심을 드러내었는데 진심마저 위선으로 치부되어 버리면 나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내가 지독히도 나쁜 인간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언제 믿게 되었을까? 내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모르는 사람의 생명을 위해 선뜻 큰돈을 보내주었을 때? 제발 약간의 자비심이라도 있다면 나를 죽여달라고 처절하게 빌다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살겠다고 순종했을 때? 그때 나는 이 순종은 하나님도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종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보내지는 않겠구나 처음으로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의 기준을 그렇게 높게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내가 예수님이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다고 엄마를 용서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니면 누군가가 내가 기억도 못하는 과거에 내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를 표했을 때? 그때 나는 내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진짜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잊어버려 지금도 그게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내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상담사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잘난 척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잘난 게 사실이에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내가 남이었다면 나는 나를 잘난 사람이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내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나는 정말 많이 노력했다. 나는 정말 정말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정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가 만약 잘못한 게 있다면 잘 몰라서,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 실수한 것이라고 봐야지,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나는 매 순간순간을 진심을 다해 살았다. 깊은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항상 곧바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감 속에 살았는데, 그래서 내일 전쟁이 일어나 영원히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금방 용서가 되고 먼저 사과를 할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한을 덜고 시원한 마음으로 죽으려는 몸부림이었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몸부림이었다. 하나님, 제 양심을 시험하시고 제게 진정으로 거짓된 마음이 있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버리시라고 나는 내 양심을 걸고 살벌한 기도를 했다.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믿어주는 만큼 내 자신의 진심도 믿어주고 싶다. 감정에 휩쓸릴 때도 있고 실수할 때가 있으면 어떠랴.. 하노이의 탑을 옮겼던 때처럼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면 되지. 내 진심은 거짓이 아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 잘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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