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 소리와 함께 교무실 문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욱여넣었다. 이상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들었다. 그랬다, 그날은 유독.
마침 담임 선생님은 상담 중이셨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우리에게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엄마는 교무실 중앙의 난롯가에 앉아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나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난로만 쳐다봤다. 다행히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싸늘한 마음을 데워주었다. 한 모금의 훈기에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지는 거 같았다.
1994년 11월 22일. 벌써 26년이나 지났지만 날짜는 물론, 시험이 끝난 후 함박눈이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채찍처럼 세찬 함박눈이 하루 종일 시험문제를 푸느라 불 난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가분재기 폭발적인 환희가 밀려왔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남자 주인공 앤디가 된 것처럼 난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환성을 지르며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았다. 벌린 입으로 눈이 녹아들었다. 청량감과 해방감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웅성대던 수능시험장 앞의 학부모들도, 학교 정문도 덩달아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했다.
수능시험 종료와 함께 애면글면 애썼던 고등학교 3년의 수고가 일단락됐다. 마음 조리며 새벽마다 기도로 응원해준 엄마의 '100일 새벽기도'가 효력을 발휘할 일만 남았다. 당시, 난 순진하게도 시험만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다. 시험의 종료가 내게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받아 든 수능성적표와 함께 허무함과 허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은 5분이 채 안 걸렸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이 짧았다. 그렇다고 딱히 상담할 내용도 많지 않았다. 내 앞에 커다란 배치표가 펼쳐졌고 성적에 맞춰 합격 가능성에 대해 어색한 얘기가 오고 갔다. A대학은 합격자 성적 평균이 이러이러하니 상향지원이고, B대학은 적정 수준이고, C대학은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단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께서는 내게 관심 있는 학과가 있냐고 물어봐주셨다. 나는 어문계열에 관심이 있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국문과, 중문과, 일문과 이렇게 세 개 학과가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원서를 쓸 대학 세 곳도 상향, 적정, 안정 전략에 따라 정해졌다. 3년간의 수고가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땅땅땅!’ 결정됐다.
상담이 끝나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엄마는 나보다 두세 걸음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셨다. 복도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학교 정문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셨다.
앞서가는 그 뒷모습이 왜소하고 초라해 보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시험 결과가 속상해서인지,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서였는지, 하루에 도시락 3개를 싸주신 엄마의 수고로움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여서인지,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속상해하실 수 있으니 소리 내지 말고 울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리 없이 울었다. 어둑시근한 하늘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도, 거리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뿌옇고 어릿어릿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3년의 노력이 평가되는 수능. 그 수능 결과는 이미 2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편하다. 그 바란 기억이 아직도 아픈 거 보면 내게 수능이, 대학입시가 어떤 무게인지 십분 짐작하고도 남는다.
수능을 본 지 26년이 흘렀다. 그동안 난 대학을 졸업하고 2개의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대학 입학처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다른 동료들처럼 거창하지 않다.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시험이 모든 걸 재단해버리는 대입 구조가 싫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성실함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입제도에 대한 청사진도 꿈꿨다. 물론 지금은 그런 순수한 믿음을 내려놓은 지 오래지만.
공정 사회와 정의 등의 이슈와 함께 대입전형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언론, 학계, 이익집단 간 논란이 점증되고 있는 현실이다. 관점에 따라 찬반 혹은 긍정과 부정적 의견이 혼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수고가 아무렇게나 해석되는 일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대학 실패, 그건 나 한 명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