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나도 트로트 ‘덕후’가 됐다

by 한봄일춘


“엄마, 아빠 또 울어!”


아들 녀석이 호들갑을 떨면서 쪼르르 아내에게로 달려간다. 처음 몇 번은 눈물 흘리는 게 부끄러워 감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젠 다소 익숙해져서일까 걱정과 놀림이 섞인 아들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연신 훔쳐낼 뿐이다.


세상에 다친 맘 낫는 약이 없을까
고단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구나.
어릴 적 어미 품 배를 어루만지시던
약보다 따뜻한 그 손길이 생각난다.
나아라 나아라 울아가 울지마라
나아라 나아라 세상에 지지마라...


가수(정다경)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노래를 부른다. 한 음 한 음이 그녀의 삶이다. 노래를 듣는 동안 눈앞에 여러 층위의 시공간이 어른어른 피어오른다. 내 안에 숨겨진 기억과 히스토리, 그리고 감정을 건드린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새 내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질그릇이 된다.


실컷 울어재끼다 사례가 걸려 꺽꺽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느새 아내가 다가와 다독여준다. 꽤나 진득한 시간 동안 다독임이 이어졌고, 나는 겨우 진정이 됐다.


“배고파. 밥은 아직?”


멋쩍어하는 내 물음에 아내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부엌으로 향한다.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돌려보기를 한다.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수십 번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다. 볼 때마다 새롭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기를 수십 차례다. 출연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함께 그들의 간절함과 진정성에 퇴근하기 전부터 마음이 벌써 TV 앞이다. 고단한 하루, 외롭고 지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위로받으니 하루도 거를 수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트로트에 1도 관심이 없던, 트로트를 한낱 촌스럽고, 어르신들만의 전유물로 치부하던 나를 아내는 신기해한다. 때때로 핀잔도 주저함이 없다.


“또 (트로트)야! 요즘, 자기 아버님 닮아가는 거 같아.”


그렇다. 아버지는 트로트 애청자다. 하루 일과를 트로트로 시작해서 트로트로 끝내신다. 뭐가 그렇게 좋으실까? 하루 종일 트로트를 들으며 흥얼거리신다. 나는 뒷방 할아버지처럼 시대에 동떨어진 아빠의 음악 취향이 못내 못마땅했었다. ‘좋은 노래도 많은데 하루 종일 트로트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니.




아버지는 한때 가수가 꿈이셨다. 그런 아버지 DNA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여동생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전국 노래자랑 출연을 목표로 노래 연습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 종일 집안 가득 배호의 ‘영시의 이별’이 울려 퍼졌다.

네온 불이 쓸쓸하게 껴져 가는 삼거리
이별 앞에 너와 나는 한없이 울었다.
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의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아버지는 한 음 한 음 당겼다 놓았다 하는 애드리브를 넣어가며 구성지고 애상하게 부르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열심히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왜 저렇게 구슬프게 부르실까 의아할 뿐이었다.



어찌어찌하다 트로트의 매력에 빠진 요즘, 아버지의 18번이 궁금하다. ‘영시의 이별’은 20대에 요절한 배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노래다.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생전에 ‘굿바이’, ‘안녕’, ‘또 하나의 이별’ ‘마지막 잎새’ 등등 이승과 영별을 예고하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배호와 그의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니 ‘아!’ 장탄식이 나왔다. 왜 이 노래가 아버지의 18번이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버지가 열 살 되던 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상처 喪妻의 슬픔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셨고 자녀 양육에 소홀하셨다고 한다. 참다못해 아버지는 도회지로 나가 공장생활과 함께 독학으로 학업을 병행하셨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 품을 내어주지 않았고 청운의 꿈을 접어야 했다. 결국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집으로 다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셨다.


그때 만난 배호의 저음에 싱커페이션은 힘들고 외로운 아버지에게 위로의 찬가였을 것이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는 그와 이야기하고 응원을 받으며 삶의 활력을 찾으셨으리. 배호의 노래에서 젊은 날의 아버지를 오롯이 만난다.




풍진 風塵 세상의 무거운 짐 잠시 내려놓고 한숨 돌리며 외로움이 스멀스멀 감겨오는 시간. 나는 트로트를 듣는다. 한과 흥이 서려있으면서도 마음을 다독이는 감성까지. 트로트는 묘하게 나의 일상과 닮았다.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느라 지치고 힘든 내 마음을 헤아려준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사근사근하게 내 감정을 담아낸다. 요즘 육체의 체기는 소화제가, 마음의 체기는 트로트가 담당하고 있다. 글쓰기가 그렇듯 트로트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날 위로해주니 어찌 듣고,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임영웅이 미스터트롯에서 불렀던 노사연의 [바램]이 나를 위로한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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