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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Feb 13. 2022

단순한 자유

무규칙 안에 핀 조화

 

점심밥을 먹고 나서 아이가 양말 한 짝을 벗어 세탁 바구니에 넣고 돌아섰다.


'왜~?'


'어~ 양말에 밥풀이 묻었는데 안 떨어져서~'


'그럼 다른 양말 신고 나와~'



이제 곧 학원을 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핑크색 양말을 신고 있다 한 짝을 벗고, 방에 들어가 빨간색 양말을 신고 나왔다. 그럴 줄 알았지만 새삼 또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렇게 신고 나가면 안 부끄러워?'


평소 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응!!'


망설임 없이 당당한 답변은 빠르게 내 머릿속 기억을 되감았다. 나는 라이언처럼 늘어뜨린 머리를 묶고서 아이를 불렀다.


'엄마 뒷모습 좀 찍어줘~^^'


'왜??'


아이는 도대체 엄마가 뭘 하려는지 도통 감 잡지 못한 채 시키는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십 대 초반 대학생활.

세 살 어린 동기들과 추억을 쌓아나갔다.


'뭐야~ 왜 그러고 다녀?'


뒤통수에 꽂힌 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흔히 긴 머리를 비틀어 비녀를 대신해 펜으로 머리를 묶었지만, 게으름과 똥 손을 가진 내겐 넘겨볼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일 뿐이었다. 대충 동여맨 똥 머리에 펜을 꽂았다. 꽃만 아니었을 뿐 뒷머리는 문구로 다발을 이뤘다. 뛰는데도 떨궈지지 않는 펜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전사처럼 등 뒤에서 장칼을 뽑아 드는 대신 뒤통수에서 펜 하나를 뽑아 따닥 누르고 필기했다.


'편해서!!'


편했다. 두 손의 자유로움이 좋았고, 무엇보다 어느 순간이든 펜을 뽑아 들 수 있으매 흡족했다. 덩달아 내 마음에 내 뒤통수가 꽤 멋질 것 같은 예감은 그 시절 내게 드물게 오르던 자기애였다.


아이의 짝짝이 양말이 불러들인 기억은 소심한 자유로 나부끼게 만들었다.


아이는 학원에서 하는 마켓 데이라 평소보다 달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아이의 핑크, 빨강 양말이 기분 좋게 튕겨 오른다.



좋다.

그런 너도.

이런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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