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ㅂ ㅏ ㄹ ㅐ ㅁ Feb 18. 2022

시를 읽었다

시를 낳다



두 걸음 걸어 나온 정월대보름 이야기



날카로운 소리로 창을 때리는

바람에 맞설 두툼한 옷을 챙겨 입었다






아파트 꼭대기 위에 서면 닿을 듯

가로등 불인지 보름달인지

빛 아래 다리가 있나없나로 가늠한다


달 보러 간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협조된 두 아이는

마스크 안 습기가 잔뜩 서리도록

재잘거렸다



앞서 걷는데 아이들이 뒤따르지 않아

돌아보니

여린 무릎이 찬 바닥에

간절히 맞닿아있다




질끈 감긴 눈에 잡힌 주름이

누가 들을세라 마스크 안에

잘게 뱉는 소원

내 눈엔

너희가 달이더라


'엄마! 나온 김에 한 바퀴만 돌고 가자~'



한 바퀴 돌고 들어와

눈썹이 얼어붙은 너희를 보자니

소주 한 잔이 빈속을 타고 들어가는

알싸한 행복이 주는 여운



나는 너희를 낳아

모든 걸 내어주고

자식을 향한 미소가

껍데기로 남은 '엄마'로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나는 너희를 낳아

마저 자라지 못한

마디마디를 마주한다


마주하지 않으려 숨겨둔 게

쓰레기통 옆에나 겨우 피어난

꽃 한 송이나 될까 했는데

비밀의 화원이 있더라


화원이 있으니

그 안에 수많은 가시가 있더라


그 향을 맡으려 달려드는

너희를 안다 보니

찔려 아프더라


내 가시에 너희가 찔릴까

더 아프더라


엄마는

'나'로만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비밀의 화원으로 내려가

날 선 가지들을 도려내고

웃자란 가지들을 쳐내

독이 오른 가시를 달래

가시를 떼어 코에 붙어

코뿔소 모양으로 너희를 웃겨


너희가 마음껏

내게 내달려

안겨올 수 있도록

너와 내가 찔리지 않도록




 두 아이를 낳은 줄 알았는데

내가 낳은 건

시였더라



봄이 오는 소리를 눈으로 들으려는

너희의 눈 속에

시가 그려지고




아침 해를 보며

사진 찍는 내게

장을 더 찍어

아빠, 누나에게도 주라는

마음의 시




거센 바람에 날리는 비닐

바람이 들어가 춤춘다는 엄마 말에

멈춰 앉아 바람의 춤사위를

새기는 시






'엄마, 나무는 좋겠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



나는 좋다

너희가 왔으니까.





누나가 소원 빌어 태어난

아이

누나와 나눠 낀 귀걸이가

마냥 좋은 너





그림자 창살 아래

자유롭게 나서지 못한 세상 대신

사라진 공룡시대를 불러내는 너






보지 못한 이들의 눈을 듣고

쉬 잊지 않는 네가





매서운 바람 안에서

온화해진 햇살 아래서

조용히 준비하는 것들




피어난 채 겨울을 건너온

마른 풀꽃도


모두 시였다




'우리 가족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 살게 해 주세요'






시들의 소원 안에

삶 전부가 들어있었다


그래 그러자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자


그러자



by 나다운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_주황빛 꽃이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