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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Feb 19. 2022

소녀는 사내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다운이야기_ 시세이

사내는 밤새 어미의 사진 아래 울부짖었다.

'뭣할라고 나를 낳았는가.. 뭣 할라고..'


사내의 어미는 바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한 집안의 귀한 첫째가 괴물 되어 괴로움에 제 옷 찢는 걸 달랠 길 없어 마른 얼굴로 본다.


소녀는 사내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 했음을.

아니 사랑으로 이 집을 채우고 싶어 했음을.


뭣하려고.

뭣하려고.

세상에 낳았고

세상을 살아갈까

그 이유를 알길 없이 길을 잃은 사내는 길을 잃은 김에 막다른 길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더 짙은 어둠은 두렵다. 허나 이미 빛은 낯선 세계다. 

나아갈 길은 익숙한 길뿐. 


빠져나오고 싶으나 시간은 도돌이표가 되어 더 깊이 빠져든다. 사내도 사내의 아내도 그들 곁에 숨죽여 존재하지 않는 소녀도 서로를 어쩌지 못해 각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소녀는 사내의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그런 사내의 울부짖음이 두려워하면서도 애틋했다. 사내를 이해한다는 건 사내의 아내를 두 번 해하는 것이기에 침묵했다. 


자식을 위해 제 살을 떼내는 사내의 아내는 그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견뎠고, 사내는 그 희생 곁에 자리할 곳이 없어 탕아가 되어 멀어져 갔다. 


'너는 그래도 사내가 좋냐?'

눈먼 소녀에게 호기심을 드러낸

주변인의 눈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사내의 눈

사내 아내의 눈

사내와 사내 아내 곁 소녀의 눈


그들은 그곳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 살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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