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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Nov 23. 2021

차라리 버려지고 싶었다_

아물었다고 나은 건 아니야







“너희 때문에 참고 산다!”



‘제발 참고 살지 마... 그게 더 힘들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엄마가 쓰러질 것 같았다. 바람난 남편을 자식 보며 견뎌내는 엄마가 가여우면서도 미웠다. 무너져내리는 가족을 고스란히 보고 들어야 했던 나의 10대는 엄마가 나를 버리바랬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함께 미워하길 바랬다.

내가 아빠의 자식이기도 한다는 걸 잊은 듯 보였다.


수다스럽던 나를 침묵하는 아이로 바꿔버린 그들은 그 숱한 밤 숨죽여 울던 아이를 모른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전쟁을 마주할 수 없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가 막아서지 못한 그 순간들에 대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를 모른다. 고작 10대 아이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기억력이 나쁘길 바라던 걸 모른다. 견뎌내기 위해 더 이상 웅크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에게 안긴 아이의 긴 밤을 모른다. 그들은 모르는 게 너무도 많은 채 자신들의 치졸한 삶을 지속해나갔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아픔이 커서 서로 보듬어야 할 때 더욱 거세게 상처 주고 있었다. 아이는 그저 빨리 커서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을 떠나서도 밤이 되면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벗어나지 못했다. 이 지독한 애증의 관계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헛소리라고 여겼다.

세상을 믿지 않은 채 끊임없이 의심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조차 믿지 않았다. 엄마 곁에서 부리지 못한 투정을 독립 후 세상에 부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 앞에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기 싫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겨울 추위보다 마음이 더 추운 탓에 추위를 타지 않았다. 그 매서운 바람마저  죄책감을 씻어 줄 수만 있다면 외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추위 속에 그대로 방치한 채 어두운 과거를 내 안에 박제해두고 스스로에게 벌을 다. 겨울은 참 더디고 길었다.


시간이 약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저기 아물지 않은 채 붉은빛을 띠던 상처가 거뭇한 흉터로 변해갔다. 각자 급하고 서툴게 상처를 동여맨 탓에 흉터는 제 모습보다 몸집이 더 커서 볼 적마다 다시 그날들을 불러들였다.


앙다문 입술이 마치 꽉 쥐어진 주먹 같았다. 

내 안에 빛 이란 게 있을까?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 누구에게 기대다 고꾸라질까 두려운 나의 청춘은  벽에 가까이 서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은 나에 대해 적으셨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무엇을 보고 저런 글을 쓰셨을까.. 나의 사정을 다 알고 쓴 걸까.. 그렇다면 왜 단 한 번도 묻지 않으셨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해결하지 못할 일에 섣불리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어쭙잖은 위로가 되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선생님 눈에 보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애착을 보이고 있었나 보다. 집을 나와서도 지나간 일을 불러들여 나를 가해하던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이란 글을 보고 한참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순간 '살고 싶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잘 살고 싶어서 그렇게나 열심히 살아냈다. 집 잃은 민달팽이가 되어서도 비를 피하는 법을 알아냈고, 추운 겨울을 춥지 않은 척 이겨내다 겨울 내성이 생겨 추위에 강해졌다. 비록 바삭이는 튀김처럼 겉만 단단해졌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 버팀으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추슬렀다. 가족의 아픔에 사로잡혀 휘청이며 나가지 못하는 내게 엄마는 어느 날 전화로 말했다.


"너만 생각해라. 너만 잘 살면 된다."


나만 잘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만 웃고 나만 즐거우면 죄스러워 이내 부스러진 마음을 긁어모아 단단하게 뭉쳤다. 타인의 아픔에 숨어들어 아파함으로써 나를 외면해 왔다. 엄마의 말은 내 안에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나를 고개 들게 만들었다.


나.. 이제 내 행복 찾아가도 되는 건가??....


가족이라는 아픔과 연민의 공간에 선을 긋고 나만의 집을 쌓기로 했다. 그리고 헌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노란 불빛이 아득하게 퍼진 그곳엔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돌아와 또 다른 이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있다. 그 책에 그어진 밑줄을 보며,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미안하지만 안도했다. 그 한 줄에 마음을 뉘어 쉬어갔다.





아름다운 것들이 눈부셨다. 마음껏 아껴주지 못한 덕에 더욱 빛났던 모든 것들.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아이는 언제고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말 한마디는 내게 밴드였다. 이제껏 서로에게 묵인한 지독했던 밤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 밴드 같은 말로 나의 겨울은 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새싹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예뻐 눈물겨웠다.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그 겨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온 지금 나는 내가 찾은 봄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원하든 원치 않든 겨울은 온다. 겨울을 나기 위한 방법은 지금의 봄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봄을 기억하는 한 겨울이 찾아와도 다시 그 계절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


맛있는 것도 먹어본 놈이 더 잘 안다지 않던가


바삭한 나는 책을 통해 내 안을 채워가는 중이다. 책을 읽은 누군가가 읽지 않은 이에게 오만함을 담아 '너도 책 좀 읽어라.' 말했다. 누군가 내게 '책 많이 읽어서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부끄럽게 말한다.


"책을 읽지 않아도 잘 지낸다면 굳이 읽지 않아도 돼요~

저는 읽지 않으면 안 돼서 읽는 거예요. "


"읽지 않고도 잘 지내시면 잘 사는 거예요~^^"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는 사람이 되어간다. 두 아이와 함께 마저 자라지 못한 나를 성장시키는 중이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기나긴 시공간을 지나 헛소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긴 밤을 웅크리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밴드 들고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싶은 책 읽는 아줌마가 되었다.


이 겨울 모두가 따듯한 이불을 덮고 잠들었기를 간절히 바라며_




그리고 엄마. 

떠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당신들 삶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해요. 

없었다면 좋은 그 시간들을 지나 그럼에도 오늘을 잘 살아내려는 우리가 참 감사합니다. 

일단 살아있다는 건 그런거겠죠.

후회할 기회, 깨달을 기회, 사랑할 기회를 얻기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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