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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Oct 16. 2023

[청소년 도서 추천]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_ 이희영

가을인데 여름을 보이고 단풍이 아닌 초록빛을 띄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단박에 마음을 당기지 못했다. 이 마음을 잇게 해준 건 <페인트>다. 청소년 소설로 인기를 끌던 책인데도 선뜻 손이 닿지 않았던 <페인트>를 사춘기를 앞둔 딸에게 읽히려 빌려왔다. 아쉽게도 표지가 딸의 눈을 사로 잡지 못한 채 반납 기한이 다가왔다. 마땅히 잡히는 책이 없던 나는 한번 읽어 볼까 하는 가벼운 심사로 책을 폈고, 이희영 작가의 책을 검색하는 모습을 이끌어내며 책을 덮었다.



핵개인 시대라고 한다. 가족도 저마다 개인적 취향을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산다. 한 집에 살지만 나무판 하나로 문을 세우고 그 안에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그 문이 튼튼하지 않다 여긴 것일까 우리는 쉼 없이 어딘가에 아지트를 소망한다. 메타버스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나만의 집. 보이지 않기를 바라나 누군가 봐주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게 지은 집에 유일하게 허락된 사람이 있다. 내가 가진 또 다른 모습을 편히 보일 수 있는 사람.


선우혁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입학하는 날 교복 입은 모습을 보고선 엄마는 운다. 감긴 눈을 베기라고 하여 피가 흘러내리 듯.


베인 상처에 피가 흐르듯, 눈에서도 왈칵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가슴속 상처가 벌어지면, 두 눈에서는 피 같은 눈물이 흐른다. 그 사실을 나는 엄마를 보며 알았다. _007


십이 년 전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사진과 동영상 속 모습이 전부였다. 메타버스에서 퇴장하듯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형은 두 번 다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입장하지 못했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024


나는 엄마의 기록 속 고등학생 형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형은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형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025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 추억을 박제한 채 보낸 시기의 나이를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아픔은 빠지지 않은 가시 같다. 가시라는 표현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가늠할 수 없는 고요한 숨소리 안에 선우혁이 십이 년 전 고등학생이던 그대로 봉인된 형의 방에 들어선다.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나이가 되어 또래가 되어버린 형의 흔적을 만진다.

어쩌다 선우혁은 형이 지은 가상세계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십 년이 넘도록 그 집을 관리하는 아니 그리워하는 곰솔을 본다.


어린 시절 자신을 소중히 사랑해 준 형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친구관계는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하고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을 가늠하며 걷는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혁이 기억하지 못하는 형을 알아가고 형의 푸른 감정과 고민들을 마주하며 자신을 바라본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 이 세 가지 마음은 상하는 법이 없다. 형(선우진)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부모님, 곰솔 그리고 선우혁.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두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아. 그 사실을 너를 통해 배웠어. _121


무언가를 기다릴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뭐든 행복하고 좋은 거야. _124


비밀은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빛이 밝을수록 그늘도 선명하고, 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잖아. 비밀도 때에 따라서는 많아졌다 적어졌다. 심각해졌다 가벼워졌다 하겠지. _166


우리는 우리 나름의 법칙과 진리대로 형을 조금씩 놓아주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잊힐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바위가 비바람에 조금씩 깎이고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_197


왜 귤이었을까?라는 의문은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보낸 이의 슬픔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겨울에 떠났다면 겨울이 잔인할 테고 눈부신 어느 날이었데도 눈부신 날이면 눈이 부셔 아팠을 테다. 그런데 귤이었던 거다.


귤이었기에 귤이어야 했다. 귤을 좋아했던 사람이 귤을 싫어하게 되었다. 좋아했노라 편히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닫힌 문이 열리고 다시 바람이 통하며 그리움을 불러와 서로 끌어안는 일을 말한다. 닫힌 문안에 삭힌 눈물이 고여 만든 웅덩이를 시냇물로 만든다.


다 읽고 보니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여야 했다.

자잘한 일들도 크게 울고 웃던 생의 모든 순간들을 영화처럼 배치한 책이었다. 티비 뉴스로 보아온 사랑하는 사람을 불시에 잃은 이들의 닫힌 문 앞에 달콤 새콤 시원한 귤을 놓고 싶게 만든다.

그 귤이 썩더라도 아마 작가는 끊임없이 그렇게 누군가의 집 앞에 놓아두는 이야기를 쓰겠구나 싶었다.


그리운 사람을 향한 이들의 그리운 회복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여러 갈래의 비밀과 소문 숲을 지나는 청소년들의 생채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우리의 또 다른 이면이 지어 놓은 안락한 공간과 함께 하고픈 사람과의 온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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