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나목
어떤 이는 숫제 고독을 천성처럼 타고나서
남보다 신비스럽게 돋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는 못할망정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닌다거나 또는 가끔 알사탕을 꺼내 핥듯이 기호품의 일종처럼 음미하기도 하던데 23p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딴딴한 고집.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 가고 있었다. 22p
각각 제 나름의 차원이 다른 고독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86p
싫은 게 나인지 나 외의 남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인지 난 아무튼 나를 포함한 내 주위의 너절한 풍경을 종이조각 꾸기듯 마구마구 구겨 던져버리고 싶었다. 44p
가식 없는 나의 것만이 남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생각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었고 그 느낌들은 절실하고도 세찼다. 나는 어두운 길을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37p
나의 느낌, 내 의사가 담긴 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말이 아니라 외침에라도 몸짓에라도 정말 나를 담고 싶었다. 163p
나는 갑자기 빛깔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갈망을 느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속에 억압되어 별수 없이 잠재해 있다가 열기를 만난 인화 물질처럼 타올랐다. 127p
어울리는 사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축복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해.
지금 나에겐 어울린다는 게 훨씬 부러워. 조화. 균형... 214p
나는 그를 통해 수많은 군더더기의 나를 벗기를 원하고 있었다. 때로는 나를 찢고, 때로는 내 뒤에 숨고 내 뜻과는 상관없이 제 나름으로 요변하는 여러 개의 나를 벗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박완서라 읽고 쓰다가
박완성이라 마무리 지어본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뿌리를 찾아 헤매며 흙냄새를 그리워하게 된달까.
발라당 까진 사람은 누구이며
고고하게 고개를 치켜든 사람은 누구인지,
누가 더 헐벗은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오늘 내가 본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
박완서 작가님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호되게 꼬집고
제 가식을 휙 잡아채 들춰내니
헐벗은 마음으로 다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해가 닿지 않는 깊은 상심
그 상심을 보려는 마음이었을까.
무섭고 추운 이들이 뒤집어쓴 넝마를 잡아채
햇볕으로 몰아넣는 그녀의 글에 이번에도 반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