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예전에 가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일 수도, 또 전례 없는 도전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을 바꿨거나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긴가민가할 때 내 주관대로 밀고해 보았던 경험들이다. 한번 그 용기의 물꼬가 트이면, 훨씬 더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p.191, 김규림 <매일의 감탄력>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사회복지의 철학과 가치가 나와 잘 맞았고, 4년 동안 자원봉사 동아리 활동과 실습 등을 하며 사회복지사를 꿈꿨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모두 공무원 준비를 했다. 학과에서도 우리 학교의 공무원 합격률을 신입생 홍보전략으로 내세웠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4년 동안 배운 사회복지 실천의 꿈은 어디 가고 갑자기 모두가 공무원을 꿈이라고 말하다니...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공무원을 준비하지 않는 나를 더 이상하다는 듯 봤고, 왜 너는 공무원 준비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친구들은 공무원이 되고, 나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내 친구들, 내 후배들, 내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와이프까지 내 주변은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들은 공무원이 되어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고, 육아휴직을 보장받으며 어느새 20년 차 6급 공무원들이 되었다. 이제는 6급 팀장이 되어 일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어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하며 모임 때마다 명품 가방을 메고 나타난다.
꿈을 찾아 홀로 길을 떠난 나는? 10년의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분야의 신입사원이 됐다.
20년 전 나는 친구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20년 후 친구들과 나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다른 위치에 서게 된 결정적 인유는 작년 회사를 퇴사한 후 나에 대해 몰랐던 몇 가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첫째, 나는 관리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둘째, 나는 목표지향적, 성공지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셋째, 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 일보다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 3가지에 대해 알고 나니 이전까지 내가 해오던 일을 다시 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났다. 나의 경력을 인정받는 포지션으로 이직을 한다면 다시 이 3가지를 반복해야 했다. 이 결론을 나 스스로 납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라고 자신했는데 40대 중반이 되고 나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은 내가 신경 쓰였다. 그러니 남편을 설득하기도 어려웠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2년이 지났고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됐을 때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행히도 내가 3가지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나답게 나의 삶을 살 수 있을 일을 찾기는 했지만 그러려면 나의 경력을 모두 포기해야 했고, 그것은 동시에 나의 연봉도 포기한다는 소리였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려고 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맞춘 듯이 물었다. “그건 월급이 얼마나 돼?”
하................................................
이런 질문을 몇 번 받고 나서 맞춤 답변을 만들었다.
“이전 일보다 월급은 작지만 저녁에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고, 강아지 산책을 시킬 수 있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그게 저에게는 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주는 일이에요”
그리고 내년 봄에 대학 친구들과 대만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친구들에게도 여행 불참 소식을 전했다.
“친구들아,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했어. 먼 미래를 준비하시는 천오빠에게 아직 미안한 선택이 됐지. 그래서 결론은 대만여행은 못 간다는 슬픈 소식이야. 적게 버는 대신 적게 쓰는 일은 자신 있다고 당당하게 선언했거든. 너희들과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지만 내 친구들은 나의 선택을 존중하리라 믿는다.”
친구들은 모두 “역시 양미리답다”라는 말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줬고, 응원해 줬다.
친구들의 “양미리답다”라는 말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을 때도, 3학년을 마치고 다시 휴학을 했을 때도 친구들은 나에게 “역시 양미리답다”라고 말해줬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났던 스무 살 그때부터 나는 이렇게 혼자 달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내가 참 놀랍다. 이 놀라움이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오늘의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나는 용기의 물꼬가 트였으니, 앞으로 훨씬 더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