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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Sep 30. 2024

나의 자부심

나는 정말 잘 잔다. 머리만 붙이면 자고, 장소, 시간, 사람 구애 없이 잘 잔다. 

잠은 나의 자부심 중 하나이다. 


나의 잠자는 능력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6시간쯤은 출발할 때 자서 기사님의 “도착했습니다” 소리에 깬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도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잠만 자서 남편이 여행 내내 삐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풍물 동아리를 했었는데 고3 최고참이 됐을 때는 꽹과리, 징 소리가 요란한 연습 시간에도 연습실 바닥에서 잤다. 첫 직장에서 직원 연수로 설악산을 갔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나는 올라가던 계단 입구에서 직원들이 내려올 때까지 잤다. 

     

나의 이런 잘 자는 능력은 신생아를 키울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100일의 기적 따위는 무시하며 6개월이 넘도록 3시간 이상의 통잠은 자지 않던 첫째를 키울 때, 잠든 아이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같이 잠에 들 수 있다. 잠드는 데 꽤 시간이 필요한 남편은 잠이 이제 겨우 들었구나 싶으면 깨는 아이 때문에 당시 거의 좀비 상태로 걸어 다녀 나의 능력을 매우 부러워했다.      


침대에 누워 남편과 투닥투닥 말싸움을 하다가 “아, 됐어!”하고 내가 등 돌린 후 몇 초 되지 않아 잠들어서 남편에게 베개빵을 맞아 본 적도 있고, 남편이 나름 19금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잠들어 버려 삐진 남편을 달래주느라 진을 뺀 적도 많다.      


아이들과 가족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순위를 매겼는데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엄마 30분만 잘게”란다. 알람을 30분으로 맞춘 동시에 잠들어서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난다. 처음 내가 30분을 자고 일어나는 걸 본 아가씨는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다. 회사에서 너무 피곤한 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30분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일어난 듯 개운하게 저녁을 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래도 걱정, 근심이 있는 날은 잠을 잘 못 자지 않느냐고 질문한다면 단호하게 “NO”다.

나는 오히려 걱정, 근심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잔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 상실증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내가 했던 걱정이 뭐였는지 흐려져 있다. 첫 직장에 다닐 때는 월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걱정되고 긴장감이 한가득이라서 일부러 토요일 저녁에 자서 월요일 아침에 일어난 적이 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어? 뭔가 내가 걱정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그거 때문이었지.”라고 한 템포가 늦어지고 나면 걱정의 정도가 낮아져 있다. 그래서 늘 실수투성이인 내가 이불킥을 해본 적이 없다. 이불킥을 할 만한 일을 생각하기 전에 잠이 드니까.      


오히려 나는 설레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잘 못 잔다. 소풍 가기 전 날 설렘에 잠을 못 자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계속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잔다. 즐거운 상상은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지구를 뚫고 달나라의 토끼를 만나야 잠을 잘 수 있다. 달나라 토끼를 만나면 그제야 ‘아, 맞다 자야돼지’ 하며 토끼 한 마리, 토끼 두 마리를 센다.      


그동안은 잠을 잘 자는 게 그저 나의 복이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게 내가 나에게 관대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였다니 너무 맞아서 놀랍다. 남편이 늘 나를 비꼴 때 “너는 너를 제일 사랑하고 너한테 제일 관대하잖아.”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면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그럼 어떡해 실수투성이에 엉망진창이라 손이 많이 가는 난데 내가 괜찮다고 안 해주면 애가 너무 짠하잖어.      

P. 141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잠을 양껏 잘 자는 사람.
자신에게 혹독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람(자신과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잠을 못 자는 사람. 
자신에게 관대하지도 혹독하지도 않은 사람은 잠을 적당하게 자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 자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관대한 사람이 분명하다. 

박연준, <마음을 보내는 마음>

잠을 못 자는 님들이여, 자신에게 관대해지시면 된대요. 

어떻게 관대해지냐고요? 음.... 아!! 오곰장 편지 32호 ‘나를 믿어주는 문장’과 오곰장 편지 3호 ‘나를 안아주는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돼요. 오곰장 3호 편지에 운명처럼 저의 에세이가 들어있는 건 진짜 럭키비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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