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부족한 나 때문에 바닥으로 꺼지는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항상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업 시간에 창 밖을 보며 시를 읊어 주시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국어 선생님. 선생님 때문에 장래희망은 늘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을 꼭 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첫 번째 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편지 한 장.
중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에게 쓴 편지에 주셨던 답장인데, 이 편지를 받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한 때는 이 편지를 머리맡에 두고 매일매일 읽고 또 읽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마음이 바닥을 찍던 날, 내가 너무 초라했던 날이면 서랍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이 편지의 존재를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희미해져 사라졌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서랍을 뒤졌더니 오래된 수첩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변했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가슴이 벅차도록 감사한 글이다.
한참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했던 10대의 미리에게 선생님의 편지는 삶의 지표가 되었겠지.
내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구나.
내가 재치와 뜨거움이 있는 아이구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을 열고 함께 해주는 따뜻함이 있는 아이구나.
그렇구나.
나 되게 멋진데?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고?
아닌 거 같은데...라고 했다가 이 문구들을 곱씹어 보면서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그래.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어. 나 진짜 괜찮은 아이잖아”라는 단단함이 나도 모르게 생겨났나 보다.
자라는 동안 이런 사랑을 받았다는 걸 잊고 지냈다니 아까워라.
나에게 이런 단단함을 주신 선생님을 그 후로 한 번도 찾아뵙지 않은 나는 정말 나빴구나 싶은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고, 이런 대단한 사랑을 받은 내가 다른 이에게 이런 사랑을 줘 본 적이 있나 싶어 또 죄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김이나에게 '칭찬'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당신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당신이 가진 무기'라는 의미예요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나의 장점을 정확하게 발견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최혜진,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나의 장점을 정확하게 발견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는 오늘의 문장을 가슴에 꼭꼭 담아두고 누군가의 장점을 발견할 때면 아낌없이 나눠줘야지. ‘당신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진짜로 당신이 가진 무기라고, 그러니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보라고’ 꼭 얘기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