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아내와 ISTJ남편의 치열한 러브스토리
P. 56
결혼에 대한 그의 확신을 떠받치는 진지한 생각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는 결혼제도에 관한 어떤 책도 읽은 적이 없고, 지난 10년 동안 아기와 10분 이상 있어 본 적도 없다. 또한 이혼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를 냉정하게 심문해 본 적도 없으며, 왜 많은 결혼이 파국에 이르는지를 설명하려면 그는 갈피를 못 잡고 당사자들의 보편적 우매함이나 상상력의 부족에서 답을 구할 것이다.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친구들이 모두 같은 해에 결혼했다. 예정된 결혼도 있었고, 갑작스러운 결혼도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니 왜 우리는 누구 하나 결혼이 뭔지, 어떤 의미인지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어?”
우리는 결혼 전 만날 때마다 내 남자친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로맨틱한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만 떠들었고, 각자의 결혼 로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결혼의 파국으로 밀어 넣은 것이 모두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알렉스가 신애 발만 안 씻겨 줬더라도 그렇게 결혼을 서둘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원망하며 MBC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나는 하나 더. 사춘기 딸에게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는 너희 아빠를 냉장고로 밀치고 키스를 퍼부었어”라고 말하는 엄마와 TV를 볼 때면 손을 꼭 잡고 계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 결혼은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어떤 의심도 없었다.
회사에서 선배들이 남편의 흉을 볼 때면 겉으로는 맞장구쳤지만, 속으로 ‘우리 오빠는 안 그러는데~’라고 생각했고, 시부모님 흉을 볼 때는 ‘나는 착한 며느리가 돼야지’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남자는 결혼하면 모두 변한다고 얘기할 때는 ‘우리 오빠는 8년을 안 변했는데 결혼했다고 변할 리 없지’라고 생각했고, 많은 여자들이 말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 예를 들면, 양말을 거꾸로 뒤집어 벗는다,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 게임이나 운동에 빠져 있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기타 등등의 어느 것 하나도 내 남자친구는 해당되는 것이 없었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결혼의 현실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남자친구는 100점에 가까운 남편감이었기에 결혼 전 나와 남편의 다름은 결혼생활에서 큰 문제가 될 거라고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남편이 모든 결정 포인트에 “근데, 엄마가.........”라고 말할 때, 그때 알았어야 했다.
P.65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알랭드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이 문장을 읽고는 머리가 띵~ 했다. 특히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라는 부분에 진하게 밑줄을 그어본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8년의 연애로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는다는 것도 몰랐을 만큼(나는 딱 싫어하는) 상상과 다른 결혼생활을 하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내가 나를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P. 290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 스스로가 누군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해 봤는데 나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내와 엄마가 의미하는 그것들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남자의 말을 다 존중하고 순종하며 나를 뒷전에 둔 채로 아이들을 위해 집 안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날마다 같은 그릇에 반찬을 차리고 또 닦고 그릇장에 넣고, 다음 날 같은 그릇을 또 꺼내 반찬을 담고 또 닦고 그릇장에 넣고, 이런 무한 반복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 종류의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이런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내게서 일어나는 죄책감도 너무 싫었어. 이런 성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냥 나 자신과 내 희망사이의 괴리에 대해 성찰해보지 않은 채, 남들이 다 좋다는 결혼을 했던 거야.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이 문장을 읽고는 내가 나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우리가 그렇게 싸우고, 결혼을 후회했다는 걸 알게 됐다.
대학교 CC였던 우리는 남편이 기숙사에 살고, 내가 자취방에 살던 기간에 내방을 청소하고, 음식을 하고, 내 빨래를 기숙사에서 해오는 건 남편의 몫이었다. 내가 부탁한 적은 없었지만 남편은 원래 자신의 역할인 듯 자연스러웠고, 나 또한 딱히 미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결혼을 한다면 당연히 그 모든 것(=집안일)들은 남편의 몫일 거라 생각했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나는 세탁기를 돌려본 적도, 쌀을 씻어 본 적도 없다. 알약 하나로 배고픔이 해결되는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엄마가 밥을 차려주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쫄쫄 굶어도 절대 내 손으로 냉장고를 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면 날마다 같은 그릇에 반찬을 차리고 또 닦고 그릇장에 넣고..... 가 나의 일이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상상하지 못한 내가 너무 놀랍지만 28살의 나는 그렇게 무지했다.
신혼생활의 시작은 내가 상상했던 대로 시작됐다. 결혼 4개월 만에 임신을 했고, 입덧이 심해서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토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 죽을 끓이고, 방울토마토를 씻어서 내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모닝키스로 날 깨워주고, 방울토마토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는 나를 위해 멸치 육수국물을 내고 녹차 우린 물에 면을 데친 후 라면수프 대신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들로 말로 안 되는 음식을 라면이랍시고 내어주던, 내가 결혼 전 상상했던 다정한 남편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의 시작은 나였다.
남편의 다정함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남편을 변하게 했던 것이다. 집안일에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나는 못하잖아’로 일관했던 나의 태도에 남편의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냈고, 그럴 때면 나는 남편이 변했다고 화를 냈다. 계속되는 다툼 속에 집안일을 분담했지만, 분담된 일을 하고 나면 남편에게 혼나는 일이 반복되니 집안일 어디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런 나에게 신혼집에서 며칠씩 머무시는 시부모님은 정말 상상의 ㅅ조차 생각해 본 적 없는 존재였다. 결혼 준비를 하며 모든 결정 포인트에 “근데 엄마가....”로 말하는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아들이었고, 시부모님은 그 아들을 보기 위해 목포에서 자주 상경하셨고, 밥도 할 줄 모르던 나는 새벽 6시에 아침식사를 하시는 시부모님을 위해 매일 하루 3끼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시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고, 나를 많이 아껴주셨지만 며느리가 쌀도 씻어본 적 없는 아이라는 건 모르셨다. 그래도 결혼 전의 결심처럼 착하고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소금 대신 설탕을 넣은 음식들을 맛있다고 먹어주시는 시부모님에게 감사하며 며느리의 역할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었다.
데이트할 때면 남자친구의 아빠는 자주 전화를 하셨고, 그럴 때면 “오빠 아빠는 진짜 다정하시다. 우리 아빠는 내 전화번호는 아나?”하며 다정한 아빠 밑에서 자라서 남자친구가 이렇게 다정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남자친구의 아빠는 나의 시아버지가 되었고, 매일 나에게 전화하셨다.........................
정말로 결혼은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을 생략해 버리고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