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를 위한 변명
여기 까지만 보면 Z세대만 옳고, 기성세대는 틀린 거냐? 왜 요즘 애들 편만 드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연히 나는 Z세대 편도 아니고, 오히려 M세대의 시작점인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기성세대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성세대들의 입장도 좀 이야기해보려 한다.
앞서 세대별 결혼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말했지만, 기성세대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때문에 직장에 헌신적이거나 순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과거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고,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도 낮은 편이었다. 기업이라는 조직은 남성 위주로 돌아갔고, 심지어 분단국가로서 의무복무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군대문화’가 기업문화에 이식되기 쉬운 구조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필연적으로 직장 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로 이어졌다. 윗분들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성과 평가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도 없이 직장 상사에 내 생사여탈권이 달려있는 상황. 윗분들의 정치 싸움에 줄만 잘 서면 성공가도가 열리고, 줄 한 번 잘못서면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는 환경. 과연 여기서 상사와 조직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하고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기에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기성세대들이 겪은 사회적 트라우마다.
격동의 70년대, 격동의 80년대, 격동의 90년대……. 사실 90년대에 ‘격동’이라는 수식어를 대놓고 쓰지는 않지만, IMF가 터졌던 그 시절도 충분히 격동의 시대로 불릴만 하지 않을까? 그만큼 기성세대들은 직접, 그리고 부모 세대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란만장했던 한국 현대사를 경험한 바 있다.
한국전쟁, 이후 있었던 극심한 가난의 시기, 그리고 IMF까지 대한민국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 그 시련은 우리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는데, 바로 ‘세상에는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산업 성장은 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화려한 1990년대를 단번에 꺾어 버린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 트라우마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토록 찬란했던 X세대마저 생존의 위기를 절감하며 사회에, 회사에 무릎 꿇게 만든 게 바로 이 IMF 사태다.
젊은 세대들은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조직에 자신을 희생하고, 불합리한 지시에도 절대복종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의전과 예의에 진심을 다하는 선배들을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만큼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눈치보기로 비굴하게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겪은 커다란 시련을 통해 개인의 무력감을 배운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능력,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자신의 지위, 일상이 흔들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마음으로 조직을 개인보다 우선시한 것도, 사회생활도 업무의 일환이자 능력이라는 말이 있는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잘 하고, 열심히 해도 회사가 무너지면, 결정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까지 쌓은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Z세대가 보는 것처럼 윗선에 대한 과도한 의전과 예의 차리기,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부와 의미 없는 휴일근무, 출퇴근 시간 눈치 보기 등은 분명 업무의 본질과 상관없는 비효율적 요소이며 개선되어야 마땅한 부분이다. 실제 기성세대들 역시 상사 앞에서는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뒤에서는, 속으로는 혼자 욕을 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문화는 사내에 존재하고, 이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Z세대가 바로 마주하는 선배들 중에는 이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흐름을 따라야 하는 고충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Z세대와 본인들의 윗세대 사이에서 적당히 맞춰주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느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Z세대들은 이런 선배들을 불합리한 세대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어느 정도 그 입장과 고충을 이해하며 서로 바른 방향을 같이 고민하는 동료로 인식해 보는 게 어떨까. 기성세대 역시도 본인들도 이전부터 불편하게 느껴왔던 불합리한 문화들을 내가 윗선이 되었다고 한 번 누려보자, 생각하기 보다는 새로운 세대와의 공존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선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