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TPO에 대하여
사회성 하니까 또 하나 생각나는 얘기가 있다.
이건 전 직장에 다닐 때 비교적 젊은 후배와 ‘요즘 애들’이라는 키워드로 대화하던 중 나온 얘기다. 요즘 애들의 특징으로 출근 후 자리에 앉은 뒤에야 에어팟을 귀에서 뽑는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헤어롤을 머리에 꽂고 있다가 회사를 나갈 때 화장을 고치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같은 얘기들이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떠돌던 얘기와 모 트렌드 리포트에 실린 내용을 버무려 잡담처럼 주고 받던 중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회사 안과 밖의 모드 변화가 명확하고,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한 장소일뿐 진짜 사회생활을 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해석을 들으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야기 중 우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 내 집 안방처럼 그러고 있으면 되겠냐고 난리 치는 사람이 대부분 아닐까 하고 의견을 모았다. 그때 같이 얘기를 나누던 후배는 물었다.
“회사에서는 공과 사를 구분하라고 하고, 또 일 할 때는 일만 신경 쓰라고 하는데, 또 어떤 때는 사람들이랑 어울릴 줄도 알고 해야지 너무 대화가 없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걸까요?”
그 친구가 공과 사를 구분 못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져서 그런 지적을 받았던 건 아니고, 평소 회사에서 오고 가며 들었던 몇 가지 멘트들을 곱씹어보다 뭔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적당히 하는 거지 뭐.
회사생활이란 참 어렵다. 일을 잘 하는 게 중요한데, 그렇다고 일만 잘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의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소통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관계가 형성 돼야 한다. 어느 정도 사교성과 사회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한다. 선배라는 호칭 대신에 오빠,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 친구가 있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실제로 무슨 문제를 일으킬 거리가 되나 싶다가도, 그렇게 서서히 공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 무너지면 일에 감정이 개입한다든가 하는 문제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에서의 꾸밈 이슈도 그렇다. 회사에서 헤어롤을 말고 있거나 옷을 막 입는 건 문제지만, 그렇다고 회사라는 공적 공간에 맞지 않는 과도한 염색이나 화장, 노출이 드러나는 옷차림 등 맘껏 내 개성을 뽐내는 건 더 문제 같기도 하다.
결국은 TPO를 지키는 게 관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TPO는 누가 정하는 것이며, 왜 그렇게 정해져야 하는가 까지 파고들면 또 골치 아파진다. 심지어 업종에 따라서, 또 회사 규모에 따라서 모자를 쓰고 출근하거나 화려한 염색을 하고 출근해도 아무 간섭하지 않는 곳들도 존재한다. 출근 시간이 9시면 8시 50분에 와야지, 라고 말했더니 ‘왜요?’라고 묻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그 질문을 들은 선배는 머리가 아파진다.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하는가.
출근시간에 대해서는 적어도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한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 가능한 여지가 있기에 나도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한쪽 편을 들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슈는 좀 접근이 어렵다. 자율도 중요하지만, TPO에 대한 조직 내 암묵적 합의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복장은 자율화 하더라도 단정함은 추구해야 한다는 대부분 회사들의 암묵적 TPO는 때로는 업무 실력만큼이나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신뢰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흘러 또 인식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정도의 TPO는 지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객, 거래처를 상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은 반드시 대면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 몸과 마음에 익혀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 체계는 그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가야 할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다. 내 옷차림과 꾸밈새가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만 판단하는 건 기업이 당장 매출만 올리면 된다고 보는 근시안적 시각과 같다고 본다. 좋은 기업은 구성원들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같이 노력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TPO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에 대한 ‘신뢰’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태도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은 열린 시각을 가져보려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일부러라도 공론화해서 구성원들이 함께 이런 원칙들이 필요한 이유를 토의하고 적정한 선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조직 내 공론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선후배 간에 자연스러운 대화 소재로 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회사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원칙, 암묵적 합의들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고 이해하는 기회, 서로의 생각 차이를 느끼고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가늠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