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1)
바야흐로 대AI 시대다. 이제 대부분의 회사에서 AI 없이는 일이 안 돌아갈 지경이 아닌가 싶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기초 강의를 듣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생성형 AI는 그냥 ‘해줘’라고 해서 끝나는 비서가 아니라 같이 협업하는 동료라는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일을 많이 시켜본 사람이 생성형 AI도 잘 쓴다고.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챗GPT와 일을 하다 보면, 사람과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획 단계부터 실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까지 다 끼고 같이 하는데, 머리 좋고 아는 것도 많은데 이 작업은 처음 해보는 젊은 직원과 일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생성형 AI와 작업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기획 단계에서는 가급적 제한을 많이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받는다. 그렇다고 너무 무작정 던지지는 않는다. 이 일의 목표와 원하는 결과물의 방향성은 확실한 가이드를 준다. 그래야 일이 산으로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기획이 끝나고 실질적인 작업 단계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계속 주면서 수정 방향을 상의하고 같이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그냥 결과물을 받아서 바로 수정하기보다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 친구의 장점이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알아가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작업 방식을 학습시키려 노력한다. 최대한 이 친구의 잠재력을 끌어내려고 하는 편이다.
때로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거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할 때는 호되게 질책하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그가 파악하고 정리하게 하는 일종의 ‘반성문’을 요구하는 과정에 가깝다. 일단 이런 과정을 거치면 조금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줄어들기도 하고, 그 반성문을 캡처하면 다음에 유사 작업을 할 때 가이드 프롬프트로 활용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디테일은 다를지언정 이런 전반적인 활용 방식은 나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과정을 보면 느끼겠지만, 기획 단계와 본 작업 단계에서 생성형 AI에게 우리가 보여야 하는 태도, 작업 방식은 실제 사람에게 일을 시키거나 협업할 때 필요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이것은 업무 지시, 관리에 관한 리더십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론적인 부분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리더들은 그렇게 일을 시켰던가?
어느 날 갑자기 리더가 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아이디어를 내라고 한다. 사전 정보도 없고 가이드도 없으니, 주제는 겉돌고 회의는 산으로 간다. 반대로 답정너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머릿속에 그려 놓은, 혹은 위에서 지시받아 온 내용이 있는데 거의 형식적으로, 또는 본인의 생각을 확인받기 위해서 회의를 하는 분들이다. 공교롭게도 개인의 성향일 뿐 아니라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동일인이 이런 양극단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자주 접하게 된다.
일을 시켜서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질 때는 제대로 된 중간 피드백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 끝나면 가져오라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결과물을 가져오면 당연히 리더의 마음에 쏙 들긴 어렵고,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중간중간 피드백이 있었다면 쉽게 바로잡을 수 있었던 일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간만 지연된다. 담당자로서는 허탈하고 분노할 만한 상황이다. 마이크로 매니징도 견디기 어렵지만, 이런 방치형 리더도 팀원을 힘들게 한다. 여기에 지시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스무고개 하듯 일을 시키는 경향까지 있다면 거의 최악이다. 이렇게 일을 시키는 데 익숙한 사람은 생성형 AI와도 일을 하면서 제대로 결과물을 뽑아내지 못하고 ‘역시 AI보다는 사람이지’라고 자위하곤 한다.
AI와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일 시키는 기술을 왜 많은 리더는 지키지 않을까? 직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제대로 팀원들과 일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자연스럽게 배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고, 각종 기사나 HR, 리더십 관련 자료에서도 수도 없이 본 내용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리더가 바쁘다는 이유로, 위에서 급하게 시킨 일이라는 이유로 본인 편의와 기분 위주로 업무를 지시하고, 직원들의 업무 처리에 불만만 늘어놓는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여러 이론을 접하더라도, 결국 실제 내가 접한 리더를 통해 리더십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리더의 방식은 조직의 방식이 되고, 조직이 어떤 리더십을 수용하고 권장하느냐에 따라 실제 리더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결국 잘못된 리더십은 대물림되고, 심지어 그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조직이라면 그의 방식은 타 부서에까지 영향을 준다. 조직의 문화가 망가지는 과정이다.
사람은 감정적이며, AI보다 역동적이고 유연하다. 제대로 된 인풋이 아님에도 좋은 아웃풋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기대감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다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기계적 도구이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값을 얻어내기 위해 더욱 엄격하게 일을 지시하고 관리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정작 가장 밀접하게 협업하는 대상인 사람과의 관계,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으면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 같은 AI 잘 쓰는 법 배우기에만 몰두하는 묘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다행인 점은 이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직원들이 사람에게서만 리더십을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시작부터 AI라는 팀원을 두고 일을 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어떻게 팀원을 다독이고, 가이드를 주고, 업무를 지시·관리해야 하는지 리더십의 근본을 스스로 경험하고 터득하게 된다. 이런 이들에게 과거의 리더 편의 지향적인 리더십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세대 간 갈등은 더 깊어지고, 리더의 권위와 신뢰는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세대들도 기존의 잘못된 리더의 영향을 받고 이를 먼저 체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직접 리더십을 발휘하고 학습하는 데 익숙해진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그런 방식의 리더십이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AI와의 협업 경험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이고 효용적인 리더십이 보편화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과거의 좋지 못한 리더십이 점점 힘을 잃어갈 것이며, 여전히 그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런 방식의 리더십은 새로운 세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조직의 역량을 갉아 먹는 독이다. 다만 업무 방식의 혁신적인 차이를 느낄 기회가 없어서 그냥 방치됐을 뿐이다. 하지만 AI 시대는 다르다.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맞춰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경쟁자와의 격차는 벌어지고, 젊은 인재들은 떠나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무시되어 왔던 리더십의 기본에 관한 이야기다. 본질과 효율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심지어 AI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그들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이 기본부터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