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2)
AI는 업무 프로세스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외주로 맡겼던 일 중 상당 수를 비전문가들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됐고, 특정 직무 부서에 때마다 손을 내밀어야 했던 업무들도 작은 수준은 당장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혼자 그때그때 처리하거나, 간단한 데모를 만들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오히려 어떤 경우 사내 전문가 집단이 가진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글로벌 정보를 챗GPT를 통해 얻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업무의 혁신을 넘어 구조적으로 조직문화와 리더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AI 시대에도 좋은 리더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디테일한 몇 가지 이슈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연공서열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유교 사상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우리나라만의 문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회사가 돌아가는 흐름에 익숙하고, 저연차자에 비해 많은 업무적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직관적인 판단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고연차자들의 무기이며, 팀워크를 끌고 가는 근간이었다.
하지만 고연차자가 꽤 긴 시간에 걸쳐 경험으로 쌓아왔던 지식과 정보, 스킬의 상당수가 AI 기술을 만나며 저연차자들도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심지어 몸에 내재화되어 있는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 판단은 AI를 통해 더 광범위한 정보를 탐색하여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된 결론보다 객관적 설득력이 약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AI가 사람이 도출한 결과를 검증하며 의사결정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하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온오프라인에서 AI와 관련한 다양한 기업들이 주최하는 포럼, 세미나 등을 듣다 보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슈 중 하나가 업무 역량의 역전 현상이었다. 한 포럼에서는 아예 이 부분이 Q&A 세션에서 첫번째 질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가 높은 저연차 직원들은 오히려 고연차자들보다 빠르게 AI 기술을 습득하고 업무에 활용한다. 결국 저연차자와 고연차자 간 업무 역량의 격차는 좁혀지고, 어떤 면에서는 저연차자가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까지 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더욱 고도화된다면 연공서열, 연차에 따른 업무적 책임과 기대도 자연스럽게 희석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저연차자들이 선배들, 리더들을 진짜 실력 있는, 믿고 따라야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와 문화 또한 약해질 것이라는 게 문제다. 아무리 회사에서 직급에 대한 마인드를 고수하더라도, 저연차자들의 진심을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몇 차례 강조했지만, Z세대들은 조직의 체계보다 일 자체, 본질을 중시한다.
여태까지 수평적 기업문화의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있었지만, AI 시대에 마주하는 현재의 상황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파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에는 필요에 의해 우리가 구현해야 하는 과제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역량과 리더십을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급자에게 업무를 주고 관리, 감독하는 상급자들도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챗GPT를 부르는 별칭 중에 우스개로 '채찍피티'라는 표현이 있다. 될 때까지 쪼면 퀄리티가 점점 높아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을 그렇게 쫄 수 있을까?
사람에게는 컨디션이라는 게 있다. 팀원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 컨디션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 또한 리더와 선배의 역할이다. 사실 이 부분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기분과 컨디션까지 고려하며 일을 배분하고 맡기고, 또 성과는 성과대로 내는 일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런데 AI는 그런 게 없다. 심지어 학습 속도도 빠르고 기본적인 리서치 역량도 뛰어나다. 정보력은 이미 내 수준을 뛰어 넘었다. AI 툴을 활용하다 보면 내가 힘들게 후배들을 가르쳐가면서 일하는데 쏟는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단편적인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관성은 무섭다. 힘들어하는 팀원을 설득하고 일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은 리더와 선배들이 해야 하는 일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일처리를 위해, 못미더운 팀원은 방치하고 그가 할 일을 조금씩 AI에 의존하는 식으로 회피하기 시작하다 보면 그 중요한 역할이 점점 뒷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이쯤되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후배는 선배와 리더의 역량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고, 선배와 리더 또한 후배들에 쏟는 애정, 그리고 성장 지원의 의지가 꺾일 수 있다. 기존 리더십과 멘토링 양 측면에서 모두 이상 신호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은 개인의 성과가 파편적으로 모여 덩어리가 되는 모래시계가 아니다.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완성되는 퍼즐에 가깝다. 아무리 AI를 활용해 개인의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이런 조직의 유기성을 유지하고, 문화를 학습, 내재화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을 넘어설 수는 없다. 결국 달라진 업무 방식은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가치들과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AI를 활용하더라도 저연차자들 보다는 실제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고연차자들이 업무 역량은 뛰어날 확률이 높다. 실제 전문가가 사용할수록 AI의 결과물도 좋아진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전까지 주로 업무 역량과 정보 수준에 기반한 권위, 지도 중심의 리더십이 약화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사람의 인식과 태도는 실제보다 심리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리더십과 멘토링은 저연차자의 조직 안착, 즉 조직의 문화와 가치관에 녹아들도록 하는 정서적 영역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일보다 사람이 더 힘들다고. 개별적인 사람이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길러지는 문화적 토양이 문제인 경우도 많다. 결국 조직의 문화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구성원의 리더십 역량을 강화하고 멘토링 문화를 구축함에 있어서 업무 지시, 처리와 관련한 부분 못지않게 조직의 문화를 명확히 정립하고 내재화 시키는 부분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리더십과 멘토링은 조직 유기성의 근간이다. 일부는 개인의 역량일 수도 있지만, 조직의 문화이자 역량에서 더 큰 힘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리더가 많은 곳에 사람이 남고, 또 그들이 좋은 리더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리더십과 멘토링의 방향성에 대해 AI 시대를 맞아 보다 디테일하고 전환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