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노동? 가짜 노동? 누군가는 억울하다

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3)

by 이정석

가짜 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성과와 상관없는 보여주기 식의 일, 그저 바빠 보이기만 한 일을 뜻하는 말로, 덴마크의 노동, 직장생활 등에 관한 연구자이자 컨설턴트인 데니스 뇌르마르크가 그의 책 '가짜 노동'을 통해 정의한 말이다.


그는 우리가 가짜 노동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성과 없이 의미 없는 노동을 하고 이로 인해 기업과 사회적으로 막대한 에너지와 시간이 낭비될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자칫 이것이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 속에 눈치보기식 야근이나 과도한 보고 등 가짜 노동으로 인식될만한 업무 방식과 태도가 많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실제 가짜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은 세대나 직급별로 조금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리서치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이와 관련한 리서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가짜 노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2.5%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짜 노동이 진짜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와닿게 느껴진다(27.9%)', '약간은 체감이 되는 편이다(43.8%)'로 71.7%가 실체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가짜 노동에 대한 체감도가 높았다. 20~40대가 32~33%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면, 50대는 24%, 60대는 16.5%로 확연히 낮아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저연령층에서 가짜 노동에 대한 체감도가 높게 나타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응답자들이 가짜 노동에 해당한다고 여긴 업무 형태 상위 항목들을 살펴보면, 실무를 하지 않고 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만 하는 업무(34.7%), 실무 없이 하루 종일 보고만 받는 것(22.8%), 실무 없이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는 것(22.7%), 실제 보고서를 쓰지 않으면서 검수나 컨펌만 하는 업무(21.1%) 등으로 나타났다. 실무는 없고 관리 업무만 있을 때 가짜 노동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실제 다음 순위가 실무를 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업무(14.6%)이기도 했다.


특히 관리 업무 비중이 낮은 저연령층에서 더 이런 인식이 높았다. 저연령층에서 가짜 노동 체감도가 높았던 부분도 이와 연관되지 않을까. 관리자로서 애환을 느끼는 고연령층으로서는 다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짜 노동에 대한 인식 차이보다 가짜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있다.


가짜 노동에 대한 수용도 측면에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가짜 노동을 하고 싶다(20대 48.5%, 30대 48%)', '주변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 가짜 노동을 해도 괜찮다(20대 38%, 30대 31%)'는 응답이 저연령층에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50대는 각각 29%, 22%, 60대는 19%, 6.5%의 응답이 나온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고연령층일수록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위 직원들의 태도에 대한 생각을 갖기 때문에 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을 수 있다. 그러나 저연령층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수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하길 바라고 있었다. 80.2%가 기왕이면 좀 더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고, 안정적인 급여가 나온다고 해도 주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응답도 52.3% 넘었다. 내가 하는 일에 권한과 힘을 실어주고 믿고 맡겨주는 리더의 말을 더 듣게 된다는 응답도 74.5%로 나타났다. 다만, 저연령층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보상을, 고연령층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에 대한 의미부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일에 대한 의미부여 관련 질문에서는 모두 30대가 가장 긍정 의견이 낮게 나타났다. 20대는 오히려 60대와 함께 가장 높은 긍정 수치를 보였다.


image.png 출처: 엠브레인 공식 블로그(“일하는 척”, “노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 : 네이버블로그)


기성세대가 그렇게 우려하는 Z세대보다 30대에서 일에 대한 의미 부여의 중요도가 낮게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결국 MZ세대는 다 똑같다는 세대담론으로 돌아가야 하나?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 혹시 이것이 저연령층을 수용할 수 있는 업무 방식, 문화의 부족에서 온 문제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20대는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로 아직은 일에 대한 희망, 열정 등이 있는 시기일 수 있다. 굳이 Z세대로 한정하지 않고 MZ로 포괄적으로 엮었을 때에도 여러 세대 분석 인사이트에서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중요시 한다는 평가는 동등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해본 30대가 되면 직장에서의 다양한 부정적인 경험이 일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낮추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MZ, 새로운 세대들이 현실에서 좌절하고 태도를 바꾸게 되는 시기가 곧 30대인 것이다.


관리 업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이런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역량과 성과가 인정 받지 못하고, 수직적 체계에서 책임자에게 과는 물론 공도 모두 몰리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 실무를 하지는 않지만 모든 권한을 독점하려고 드는 일부 관리자와 조직의 태도에 젊은이들이 지쳐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권한과 힘을 실어주고 믿고 맡겨주는 리더의 말을 더 듣게 된다는 응답이 74.5%였다는 부분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 설문 결과만으로는 관리자 직급자들이 억울할만 하지만, 어쩌면 지금 저연령층도 다른 측면에서 억울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유의미하게 봐야 할 이슈가 있다. 실무는 없고 관리만 하는 상위 직급자에 대한 저연령층의 불신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업무력에 기반한 상사, 선배의 권위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생성형 AI 활용에 있어서 일을 많이 지시해본 사람, 그 영역에 대한 전문가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선후배 간 지식의 격차는 확실히 좁혀졌고, 언제 어떻게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뒤집힐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과거의 경험치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아니다. 결국 지속적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며 실무를 이해하고, 실제 실무자만큼 할 수 있는 리더만 인정받을 수 있다. 원인과 맥락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시대예보’ 시리즈의 송길영 작가도 과거 한 강연에서 더 이상 관리자로만 남는 리더는 인정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제 한 명이 여러 명, 여러 포지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산업화 시대의 분업 방식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그 핵심은 동등한 눈높이다. 급격한 변화 앞에서는 그 동안 쌓은 지식, 경험보다 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변화를 따라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 실무 감각을 유지하고, 후배들의 의견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태도, 방식이 몸에 배야 한다. 단순히 젊은 세대와 잘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간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더 이상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일, 사람을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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