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사람을 무너뜨리는 절대 악, 가스라이팅

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4)

by 이정석

직장 생활 중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오피스 빌런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대다수 그 오피스 빌런이라는 자들의 행위는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직장 내 문화와 세대적 특성을 파고들어보면 어느 정도 인간적인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절대 이런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도, 용납해서도 안 되는 행위가 하나 있다.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1938년 발표된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희곡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극중 남편은 가스등 밝기를 일부러 낮춰놓고, 아내가 불이 어두워진 것 같다고 말하면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부정한다. 이 행동이 반복되면서 아내는 점점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의심하며 현실 인식이 무너지고 남편 말에 생각과 판단을 의지하게 된다. 이처럼 지속적인 압박으로 상대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심리적 지배 행위를 우리는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판단 기준이 자기 안에 있지 않고, 가스라이팅하는 사람에게 넘어가 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 빠지면 정상적인 판단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특히 직장 내 가스라이팅 상황은 주로 가해자가 직급, 사내 영향력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반항할 수 없는 관계적 특성이 가스라이팅의 기본적인 배경이 되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자기 자신마저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것이다. 직장 내 가스라이팅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형태는 능력과 성과, 인성 등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주변에서 피해자에 대해 ‘그 사람 그렇게 능력 없는 사람은 아니던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은 아니던데’라고 옹호를 해도 가해자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스스로 이 상황이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한 상태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 동안의 판단과 결정, 나아가 자기 자신이 부정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리더급만 가스라이팅을 하는 건 아니다. 신입사원과 1년차 선배 등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레벨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일어난다. 어느 지위든 자신이 힘의 우위를 차지할 때, 그 힘을 과시하고 확인하는 용도로 의도적인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죽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거기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말도 안 되는 지시와 평가에도 힘없이 따라오는 상대방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그야말로 악의의 행동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해본 사람들은 쉽게 반복한다는 점이다. 할 일은 쌓여 있고, 눈 앞에 건 빨리 처리해야 하고, 그럼 이것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더 아는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하급자들이 그냥 따라와 주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가스라이팅은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효과를 봤다고 스스로 느끼면 이를 자신의 성공사례로 인지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 더 나아가 가스라이팅을 활용한 조직, 인력 운용을 동료와 후배들이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은 하나의 조직 문화가 되어 간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기업 조직문화는 이 현상이 만들어지기 특히 쉬운 구조다. 직접 “가스라이팅을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지만, 상당수 상위 관리자가 “왜 밑에 애들을 못 휘어잡느냐”라는 말로 중간 관리자에게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 나도 모르게 조직 장악을 명분으로 가스라이팅을 권장, 혹은 방조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통제’와 ‘장악’을 성과로 착각하는 순간 누구든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 문제를 넘어 조직의 역량을 갉아먹는 독버섯이 된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의심하고, 오로지 가해자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상태가 된다. 또한 가스라이팅은 완전한 정신적 지배를 위해 인격훼손이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온전한 가스라이팅이 이뤄지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리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자신감 결여, 공포감 등으로 인해 생산성이 저하된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직장 내 심리적 조작과 통제가 우울감, 자기효능감 저하,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진다고 밝힌 바 있으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서도 심리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조직에서 의사결정 품질과 학습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이 한 명의 직원을 자신의 몸값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많은 투자가 들어간다. 연봉뿐 아니라 업무에 사용되는 기자재와 소모품, 회사 적응 및 직무 훈련 등에 투입되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상당하다.


기업에서는 인재 채용 시 그 사람이 이 회사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100% 확인할 수 없다. 결국 그의 잠재력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회사가 기대한 그 잠재력을 소멸시켜버린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당연하게도 늘 퇴직을 꿈꾼다. 앞선 글에서 수차례 언급했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부당한 대우와 고통을 참지 않고 쉽게 떠나는 경향이 강하다. 몇 년 간 회사가 투자한 인력 개발 비용이 매몰비용이 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인격 살인이다. 가스라이팅의 트라우마로 이직 후에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스라이팅은 결국 개인을 망가뜨리고, 조직의 판단력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무너뜨린다.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가해자 스스로도 같이 가스라이팅 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반성과 회복의 기회가 생길 수 있겠는가.


때문에 가스라이팅은 기미가 보일 때부터 반드시 끊어내야 하는 행위이자 문화다. 누군가 가스라이팅의 기미를 보이면 직위, 선후배 관계에 상관없이 시그널을 줄 수 있는,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은 성과와 상관없이 엄격한 조치와 문화적 압박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결과만 보지 않고, 문화와 일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살필 줄 아는 성과 평가와 보상 체제는 기업 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앞으로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은 기업이 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윗사람 앞에서도 너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불만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이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로잡는 기회라고 본다. 가스라이팅의 기미가 시작될 때 바로 강력하게 항의함으로써 더 이상의 진전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 가스라이팅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초기에 반드시 끊어내야 할 문화다. 동료로서, 그리고 언젠가 리더가 될 사람이라면,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이 ‘납득’인지 ‘의심’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봐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노동? 가짜 노동? 누군가는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