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로 '김부장'-찐 직장인들의 공감 드라마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by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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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국내 굴지의 통신기업 ACT 영업팀에서 근무해온 김 부장. 대기업에서 충실히 일하며 가족과 ‘서울 자가’라는 표준적 성공을 이뤄낸 그는 자신의 삶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아들에게도 대기업이 최고라며 SKY를 나왔지만 서울대 입학에는 실패한 그가 삼수를 해서라도 내심 다시 서울대에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회사 내 정치와 성과 압박 속에서 그의 위치는 흔들리고, 예기치 않게 실직 위기와 좌천의 위협에 직면한다. 실직 위기 상황에서 회사의 비윤리적 결정을 따르며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지, 인간적인 양심과 자존심을 지킬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전부라 여겼던 회사를 나오기로 한다.


준비 없이 이뤄진 퇴사,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깨닫고 방황하는 김부장. 일과 정체성을 동일시해온 그는 위기를 겪으며 자신과 가족, 직장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마침내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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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 최고의 드라마를 하나 뽑으라면, 나는 단연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고르겠다. 이 드라마가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이전에 블로그에 쓴 중간 리뷰에서는 불필요하게 과도한 빌런 설정에 쓴소리를 쏟아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꽤나 잘 만든 드라마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출연진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었고, 다른 팀원들의 서사까지 챙겼던 원작 웹툰의 물량을 12회차 드라마에 맞게 김부장에 집중해 깔끔하게 털어놓은 것 또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인상적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감'이다.


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김부장'이 '김낙수'를 마주하며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김낙수' 그 자체의 방향을 정리하던 오열씬은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안고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외에도 대다수의 에피소드가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쯤 보고, 듣고, 직접 겪어봤을 장면들로 채워져 오늘날 현실 직장인들에게서 진정성 있는 공감을 이끌어냈다.




변하지 못하고 머무르는 '꼰대' 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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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겪어봐서 아는데
이건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어


꼰대 김부장은 젊은 팀원들에게 말한다. 나름 직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그는 실무를 직접 뛰던 시절의 기준, 야근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의 속도, 리더의 선택과 지시에 알아서 따라오는 조직 문화에 머물러 있다.


세대 변화에 적응을 못한 것은 물론, 임원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서 잘 만들고, 발로 뛰며 성과를 만드는' 영업맨의 시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다.


팀원들은 막내가 대리 진급이 눈앞인데도(사실 이미 진급했어야 하나 김부장 동기를 위해 희생된 케이스) 보고서 폰트까지 참견할 정도로 뭐든지 '실무자' 관점의 자기 기준에서 평가하고 마이크로매니징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그의 태도를 오직 자신에게서만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기는 좀 어렵다. 이는 김부장의 사수였고, 현재 임원이 된 백상무의 김부장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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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크게 봐라, 너도 이제 임원 돼야지!
야, 김부장! 아니, 낙수야. 이거 네가 해결해줘야겠다.


백 상무는 김부장에게 리더로서 역할을 주문하지만, 동시에 급한 상황이 생기면 영업맨으로 뛰던 시절 사수와 부사수 관계로 돌아가 그에게 행동적 해결사로서 역할을 요구한다. 어찌보면 세대공감, 리더십 측면에서 약점이 있는 김부장이 짬에 기반한 실무 능력으로 만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주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그가 성찰하고 한 단계 나아가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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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에 대한 백상무의 인간적인 아쉬움은 김부장이 공장으로 좌천되고 난 후 마주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만든 PPT 기획안을 자랑하듯 내보인 김부장에게 그는 "여전히 문서 잘 만드는 김부장에 머물러 있으면 어떡하냐"고 안쓰러운듯 말한다.


평소 김부장에 대한 그의 평가이자 숨겨왔던 속내가 터져나온 장면이다. 아마도 백상무가 김부장에게 보인 진심을 가장 잘 담아낸 장면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명확한 진실이지만, 어쩌면 백상무는 그 스스로조차 오랜 인연의 김부장을 내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명분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닐까 싶어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의 직무적 관점에만 머무르는 김부장. 그러나 이것은 김부장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조직이 사람을 업데이트하지 않는 방식의 문제처럼도 보인다. 결국 회사는 직원의 쓸모를 필요로할 뿐, 직원을 책임져주지도, 지켜주지도 않는다.



준비 없이 다가온 은퇴, 그 방황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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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까지는 사실상 본격적인 이야기를 앞둔 빌드업에 불과했다.


진짜 현실은 역시 실직 후의 삶이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김부장은 완전히 흔들린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고, 자신을 설명할 말도 사라진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명함이 사라지자 자존감도 같이 사라진다.


자신의 경력이면 어디서든 인정 받고 환영 받을 줄 알았지만, 커리어 시장은 냉혹했다. 직장인으로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의 커리어를 ACT 밖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기회조차 없었던 그는 자신의 보잘것 없는 존재감에 상처 받는다. 그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그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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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출신이라는 경력에서 단물만 뽑을 생각뿐인 동서에 배신감을 느끼고, 할 일이 없어 대리운전에 나섰다가 전 팀원들을 마주하고 당황하는, 그리고 끔찍한 공황 발작과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준비 없는 은퇴 후 겪는 그의 비참한 현실과 방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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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부장은 자신에게 트라우마와 같았던 형을 찾아가고, 이를 계기로 세차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게 된다.


이 전환 과정은 멋있지 않다. 당황스럽고, 자존심이 상하고, 서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현실적이다. 김부장은 새로운 인생으로 당당하게 서기까지 많은 고민과 스스로의 마음다짐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홀로서면서 이전까지 자신을 지탱해왔던 '김부장'의 정체성과 이별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ACT 법인 차량 세차 용역 입찰을 따내고, 그 지하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 당당해졌다. 이전 팀원이었던 후배가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하며 '너무 멋지십니다'라고 인사를 전할 때, 비로소 그는 진정한 김낙수가 되었다.


장면은 감동적이지만, 사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흐뭇하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커리어 전환은 ‘미리 준비된 선택’이 아니라 ‘무너진 이후의 생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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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묻는다. 세대가 바뀌어도, 직위가 바뀌어도,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현실은 무엇인가.


지금도 많은 직장인들이 여전히 ‘회사 안의 역할’만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바쁜 일상에서 내 커리어의 방향을 고민할 시간도 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것보다 당장의 과제들을 해결하는 게 더 급하고 무난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를 나가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내 직무는, 내 경험과 기술은, 이 직장은 내게 언제까지 유효할까?


많은 직장인들이 하고 있는, 혹은 꼭 해야 할 고민이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이 고민을 지속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흔들림을 줄일 수 있고, 회사의 울타리에 머무르는 직장인의 관점을 벗어날 수 있다.


그 고민은 김부장의 이야기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점점 이런 고민들을 마주하며, 최근에 직장인 모임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내 커리어, 더 나아가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지금의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고민해보는 자리다.


혹시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고민에만 머무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면, 같은 사람들과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한 단계씩 성장해보는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플랜 B - 지금까지 잘 살아온 김부장들을 위한 인생 2막 설계 커리어 로드맵


* 이미지 출처: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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