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아닌, 선배가 돼라

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7)

by 이정석



며칠 전 감자탕집에서 혼자 늦은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인근 테이블에는 어린이 대상 체육 관련 학원에 근무하는 사범들이 회식을 하고 있었다. 공식 회식은 아니고, 사내 커플 두 팀의 더블 데이트 분위기였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됐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일에 대한 주제였다. 저마다의 아이들을 가르칠 때 태도와 기준, 일에 대한 책임감 등 자신들의 업무 철학과 경험을 공유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선배에 대한 뒷담화가 끼어들기도 했다. 양쪽 모두의 말을 들어봐야 정확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주장이 타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의 일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는 명확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들은 미디어나 SNS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무책임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Z세대와의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사적인 자리에서마저 자신의 일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을 보며 현재의 세대담론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인가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다. 세대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문제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흔히 폐급이라 불리는 빌런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그는 내 선배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각 세대가 보이는 성향은 어느 정도 있지만, 결국 실제 일에 대한 진심과 태도는 사람 나름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리더십과 업무방식의 한도 내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쉽게 ‘요즘 애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한다. 이것은 세대 인식이라기 보다 어찌 보면 상사의 관점에서 갖는 자기 편의적 발상에 불과할 수 있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하는 방식과 기술은, 그리고 시장의 태도와 돌아가는 방식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업무에서 AI 활용이 증가하면서 선후배간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줄었고, 업무를 이끌고, 지시하고, 가르치는 리더로서의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선배의 역할은 회사의 문화와 가치관을 전수하고 구성원으로서 후배들이 조직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업무적인 역할은 사실상 개별 업무나 팀 전체의 업무 상황에서 효율적인 협업과 일의 분배가 이뤄지도록 하는 설계자와 조언자 정도에 집중하면 된다. 전자가 우선이고, 전자의 역할을 배경으로 둔 상태에서 후자의 역할이 따라와 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결국 일방적인 지시나 교육 보다는 인간적인 교감과 신뢰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조직의 상하관계 하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경험자로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


선경험자는 후배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조언하고,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경험치는 그 과정에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자신의 경험치를 권위와 권한으로 삼아 정해진 패턴에 녹아들도록 사람을 이끄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방식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라떼는’ 레퍼토리는 대부분 자신의 무용담에 기반을 둔다. 과거 문화와 환경적, 기술적 지원이 부족했던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했던 무용담, 자신이 과거 이룩했던 성과 등이 주가 된다. 여기에는 은연 중 ‘그때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있으니 군말 말고 따라와라’라는 메시지나, 자신을 우러러 봐줬으면 하는 인정욕구가 끼어 있다. 이는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며 후배의 어려움, 부족한 부분을 캐치해서 조언이나 도움을 줘야하는 선경험자의 역할로 봤을 때 최악의 태도다.


최근 흑백요리사 시즌 2로 많은 셰프들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후덕죽 셰프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곧 팔순을 눈앞에 둔 모든 셰프들의 선생님으로서 존경을 받는 그. 흑수저 셰프뿐 아니라, 백수저 셰프들도 대부분 그와 경력, 연차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고, 실제 그의 제자가 백수저 셰프로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팀 협업을 하면서 항상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 다른 셰프들에게 믿고 맡기며, 참외 짜기 등 허드렛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한다. 그 역시 ‘라떼’라는 말을 쓰긴 했다. 면포 없이 참외를 짜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때는 다 이렇게 했어’라고 말하지만, 그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린 그냥 탈수기니까’라는 위트를 얹으며 가장 먼저, 가장 열심히 직접 손으로 짜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유퀴즈’ 등 다른 방송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후 셰프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 동안 일궈온 성과들을 당당히 말하고, 자신의 무용담을 거리낌 없이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자부심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후배들과 일을 할 때는 말보다 같이 필드에서 몸을 부딪치며 모범을 보이고, 필요한 때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살려 돌파구를 만드는 사람. 자신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들은 배경으로 둔 채로 자연스럽게 후배들, 제자들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참어른’, ‘참스승’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리더는, 상사는, 선배는 모두 후배들에 비해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대신 그 역할에 따라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모든 순간 선배의 관점과 태도로만 팀원들을 마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본은 먼저 선배가 되는 것이다. 좋은 선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후배들에게 인식될 때 급한 업무 상황에서의 상사, 조직 운용 관점에서의 리더로서 소위 말빨이 먹히고 후배들의 상황에 맞는 태도와 행동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Z세대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일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다수의 Z세대에게서 일의 태도나 내 지시, 교육에 대한 반응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일부는 소통 방식에서의 차이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선배는 먼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고, 소통 방식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후배를 내 지시를 따라야 할 아랫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인지상정은 윗사람에게만 잘 보일 때 필요한 개념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다.


물론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소통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는 그 소통 능력이 어쩌면 직무기술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시대다. 고민하고, 노력하고, 계속 진심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진짜 소통하는 선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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