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포비아는 무능이 아니라, 성향이다

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8)

by 이정석

요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들과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외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외, 혹은 사내에서도 팀 외부와는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자주 본다. 이들은 왜 대면 소통, 또는 전화를 해야 하나, 이메일이나 메신저로만은 못하나 순간순간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개인 차이이지 세대의 공통 특징은 아니다. 그리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마다 다른데 또 동시에 일종의 경향으로 나타나는 특성이기에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사람을 만나거나 만남에 준하는 형태의 연결, 미팅을 Z세대들이 두려워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이들은 이미 스스로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SNS 스타일의 소통방식에 익숙하고, 코로나 시국에 대학 때부터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 있다.


이때 누군가 말한다. 전화도 얼굴 안 보는 거지 않느냐고. 이게 결정적인 차이다. 과거에는 얼굴을 마주하고 할 일을 어쩔 수 없이 통화로 했다면, 지금은 심플하게 메신저나 문자로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확장한 게 통화다. 거부감과 부담의 장벽이 다르다.


통화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대화에서 상대방에게서 보이는 무언의 표시들을 캐치하고, 그것을 대화의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통화는 그것이 배제되어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팩트와 진심으로만 마주하는 자리가 통화의 본질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통화를 가볍게 일상적으로, 그냥 지나치는 순간순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통화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회사에 속한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 관점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확실한 철학과 전략적 관점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이라면 말이다.


통화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사람일수록, 통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렵다. 그런데 템포를 조율할 수 있는 워딩 기반의 메시지, SNS 세계에 있던 사람들이 그 속도나 태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나는 기업 홍보 담당자 출신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통화의 어려움과 부담을 잘 안다. 저녁 5시 이후에 전화가 울리면,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마감 후에 전화가 오는 것은 술자리, 아니면 단독 기사일 가능성이 높고 대부분 회사에게 ‘단독’은 리스크를 의미한다. 그래서 거의 전화가 울리는 순간은 한상 몸서리치는 게 습관이 됐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랬으므로, 너희가 나보다 전화 받는 상황이 낫지 않냐고 묻지 않는다. 콜포비아는 시대의 부담일 수도 있고 개인의 선택일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꽤 많은 젊은이들이 그로 인한 감정적 소모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그 쉬운 걸, 그 중요한 걸 제대로 못하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 대신에 그런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콜포비아를 개인이 해소하는데 있어서 가장 권장되는 방법은 통화 전 이야기할 사항을 미리 정리하고 시나리오별로 메모지에 적어놓는 것이다. 일종의 연기다. 하지만 연기는 한계가 있다.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스스로 예행연습이 되어야 한다. 결국 통화의 경험이 쌓여야 하고, 그 시작점은 루틴화된 통화를 기반으로 실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쉽게 가벼운 의사소통, 책임자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행동에 하급자들을 동원하는 경우도 많고, 미처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책임을 몰아 붙이는 경우도 있다.


통화의 가장 어려운 점은 내가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그 부담을 얼마나 줄어주느냐, 얼마나 결정권에 가까운 선배들이 뒤를 받쳐줄 수 있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다.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할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은 조직이다. 이 사람이 충분히 잘 한 일이 통화에 익숙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 당하거나 무위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은 콜포비아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그 자체로 충분히 기능했느냐의 문제로 봐야한다.


나는 콜포비아를 겪는 젊은 세대들을 십분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기업문화도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결국은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직접 그 콜에 대한 부담을 지기 어렵다면, 동료,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라. 미리 물어보고 도움을 받아 나만의 답안지를 만들어라. 당신에게 결정권은 없고, 믿을 것은 태도 뿐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내가 우리 팀의 과업을 아는 만큼, 내가 부족한 부분을 조직에서 알고 미리 준비하고 있는 수준에 맞게 형성된다.


잔인한 말이지만, 결국은 내가 아는 만큼 대표성, 즉 통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그 순간 팀원으로서의 자격이 생긴다. 당연히 이는 조직의 뒷받침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묻기 전 나의 통화에서 가질 수 있는 역량, 결정권에 대한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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