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장은 없다: 직장의 미래, 그리고 직장의 의미

2부 고칠 건 고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입시다(10)

by 이정석

이전 글들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전 국민이 취준생인 시대를 살고 있다. 취업으로 대표되는 사회 진출 시기는 점점 늦춰지고, 기대수명은 계속 높아지는 시대. 정년은 정해져 있지만, 그 후 지금껏 일해온 시간만큼, 어쩌면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직장, 커리어의 수명은 단축되고,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경력을 활용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을 모색하거나, 프리랜서, 창업, 재취업 등등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벌써 이 길을 준비하고 있고, 누군가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는 일단 취업하고 나면 내려오는 일만 처리해도 그럭저럭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를 지나, 자신의 인생, 커리어를 ‘경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당신은 인생과 커리어의 경영자다. 그리고 현재 직장을 떠난 후의 삶에서 좋든 싫든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야 하고, 거래처를 찾아야 하고, 낯선 동료 또는 파트너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은퇴 전까지 쌓아왔던 커리어 곡선의 최고점을 찍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상황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퇴사, 은퇴와 함께 당신이 갖고 있던 직급, 지위는 제로가 된다.


기성세대들은 이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조직 내에서 권한과 힘은 이제 막 입사한 후배들보다 나에게 쏠려 있고, 그저 정년까지 내 방식을 고집하며 버티는 건 별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 내가 맞이하게 될 고객, 거래처, 파트너들,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는 사회와 비즈니스 관계는 현재의 Z세대라 불리는 이들, 그리고 그다음 세대들이 주를 이룬다. 과연 지금 조직에서 그들과의 공존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 조직관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인생 2막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보면 현재 기성세대들은 세대 갈등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 역시 기성세대와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AI와 로봇의 시대 이후 일자리 변화에 대해서 다양한 담론이 나오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직장과 일의 개념, 주기가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2막, 3막으로 연결되는 형태의 구조로 일자리 환경, 정책이 개편될 것으로 생각한다.


송길영 작가가 시대예보 시리즈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조직은 많은 고정비용을 쓰면서 다수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없고, 일자리 시장에는 프리랜서, 용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양질의 인력들이 넘쳐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그 안에는 과거 관점으로는 은퇴자로 불릴만한 나이, 경력의 사람들도 많다. 내 직장에서 은퇴한 꼰대들을 직장 외 업무적 관계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이때는 갑을 관계를 넘어 효율적으로 일의 호흡을 맞추고 양적, 질적인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현재의 기성세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웬만큼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사람을 지휘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인지 잘 안다.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 불편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심지어 앞으로 조직에 소속된 직장인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단순히 플레이어가 아닌, 경영자 관점에서 일해야 한다. 커리어 관리도, 당장의 현업도 각자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경영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살아남는 시대인 것이다.


은퇴자들이 반드시 취업시장에 재진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생길 수는 있다. 일례로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적 장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나 역시 기본소득 제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보는 사람 중 하나다. 로봇과 AI의 발달로 일자리가 감소하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드니 시장의 구매력도 급감하고 이를 방치하면 결국 구매 없는 생산만 이어지며 산업의 체계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결국 어떻게든 시장의 구매력을 일정 수준 떠받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해진다.


그런데 과연 첫 정년을 맞이한 후 지금까지 살아온 삶만큼 더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에만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먹고사는 문제가 일정 수준 해결되면, 정신적, 사회적 만족 방향으로 욕구가 이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일자리 상황을 기반으로 우리가 현재의 세대 갈등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일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그리고 그 일이 실현되는 일터라는 공간, 환경 또한 소중하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사람도 많고,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직장 생활은 수많은 빛나는 순간들로 틈틈이 채워져 있다. 성장과 성취에 대한 보람, 스스로 내 삶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 안정감을 주는 루틴한 일상, 정말 마음도 호흡도 잘 맞는 동료를 만나는 흔치 않은 경험,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된 팀원들과의 의미 없지만 또 빠지면 서운한 수다…….


예전에 한 직장 상사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재택근무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난 회사에 나오고 싶을 거야. 피곤하고 출근하기 싫고 그런 때가 많지만, 사람들하고 웃고 떠드는 일상이 없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 같거든. 많은 이들이 직장 생활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토로하지만, 그것은 직장 생활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어렵고 괴롭고 힘든 일의 연속을 순간순간 반짝이는 행복과 즐거움의 기억들로 버티고 살아가는 것.


우리에게 직장은 그런 곳이고, 그런 의미다.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그래서 우리는 세대담론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찾기 보다는 더욱 더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일터, 그 안에서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의 순간, 경험을 끼워넣기 위해서.


우리에게 직장은 그런 곳이고, 그런 의미다.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그래서 우리는 세대 담론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찾기보다는 더욱더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일터, 그 안에서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의 순간, 경험을 끼워넣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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