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찾아줘’
프리랜서 작가 닉과 그의 아내 에이미는 운명과도 같은 만남으로 시작된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하지만 결혼 5주년 기념일, 에이미가 집에서 실종된다.
닉은 지역 사회의 도움으로 에이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은 그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경찰 론다는 에이미의 실종에 얽힌 증거들을 수집하고 관찰하며, 닉을 범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 에이미의 수수께끼 편지가 발견된 이후 에이미의 친구라는 동네 여성의 증언까지 이어지며 경찰뿐 아니라 이 사건을 지켜보는 대다수 사람이 그가 에이미를 죽였을 것으로 확신한다.
사실 대학 강사로 일하며 어린 여제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던 데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에이미와 결혼 생활이 거의 파탄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던 닉은 에이미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닉이 점차 궁지에 몰리는 와중 닉의 아버지의 집에서 반쯤 타다 만 에이미의 일기장이 발견되는데, 그 안에는 닉에게 조금씩 실망해가던, 그리고 끝내는 죽음의 공포마저 느꼈던 에이미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2014년 개봉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12년 길리언 플린이 발표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그가 직접 각본을 맡았다. 또한 벤 애플렉과 로자먼드 파이크가 주인공 닉과 에이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에이미 역을 맡은 로자먼드 파이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극찬을 받은 바 있다.
핀처 감독은 ‘세븐’, ‘파이트 클럽’ 등 다양한 스릴러 작품에서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하고도 서늘한 시선,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점진적으로 조여드는 긴장감과 예상치 못한 반전, 그리고 이를 충격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표현해내는 영상미로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 때문에 많은 마니아층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그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에이미라는 한 여성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에이미가 남긴 단서들과 닉의 행동을 교차해 드러냄으로써 그들 사이의 균열을 보옂고, 진실과 거짓 사이에 놓은 혼란으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후부터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반전을 거듭하고 예상을 뒤엎으며 전개되는 스토리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정교한 장치들의 조합에 있다. 특히 이 정교함은 영화가 중반부를 지나면서 사실은 비밀을 밝혀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끼를 따라오게 하기 위한 에이미의 교묘함이었음이 드러나며 한 차례 관객들을 짜릿한 충격으로 몰고 간다.
에이미는 닉이 자신이 꿈꿨던 최고의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실에서 조금씩 닉과 균열을 겪던 그녀는 결국 그의 무관심과 배신에 대한 극단적인 복수를 실행한다.
그녀의 부모는 에이미를 모델로 한 어린이 책 시리즈를 출판해 큰 성공을 거둔다. 그 동화의 이름은 ‘어메이징 에이미’. 세상에 없을 이상적인 이미지로 에이미는 동화 속에 그려져 있었고, 어려서부터 에이미는 그런 동화 속 에이미와 실제 본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비현실적인 이상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그녀는 사랑에서마저 이러한 자세를 유지했고, 자신의 이상을 저버린 옛 연인들도 성범죄자로 누명을 씌우는 등 처절하게 응징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그녀의 행동, 그리고 그녀가 설계해놓은 교묘한 장치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관객은 에이미가 정체를 드러내는 중반 이전까지 닉이 그녀를 살해한 것인지 아닌지 심리적으로 갈팡질팡하게 된다. 여기에는 작중 대중의 시선이 큰 몫을 차지한다.
닉의 행동과 말투는 점차 언론과 대중의 가십거리가 되고, 과거와 현재의 태도는 언론과 여론의 조명 아래서 왜곡되어 해석된다. 증거와 정황이 쌓여갈수록 사람들은 닉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닉은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 된다. 심지어 그 의심과 비난은 유난히 가까운 쌍둥이 여동생과의 관계마저 부정하고 비밀스러운 루머로 이어질 만큼 심각하다. 확증편향에 잠식당한 사회적 시선은 그렇게 잔혹하게 닉을 조여온다.
우여곡절 끝에 전 연인을 살해하고 그마저도 그의 납치, 감금, 폭행에 대한 정당방위로 조작한 뒤 집으로 돌아온 에이미. 닉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소름 끼치고, 이제는 에이미를 의심해야 함을 인지한 론다 역시 그녀를 추궁하고 싶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심리를 흔드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미친 전 연인이 일으킨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있었고, FBI마저 그녀가 무사히 복귀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한다. 닉의 범죄 행위가 밝혀지기만을 바라던 대중과 언론은 이제 에이미의 귀환, 그리고 두 사람의 재회로 시선을 집중한다.
닉을 사실상 살인자로 규정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던 앵커는 두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자신을 마구잡이로 비난했던 앵커에게 따져 보지만, 그녀는 뻔뻔하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냐며 능청을 떤다. 뛰어난 실력으로 홀로 에이미의 진실을 파헤치던 닉의 변호사 테너는 어차피 돈도 많이 벌게 되었는데 아내를 화나게 하지만 말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다.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에이미의 정교한 판 안에서 닉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결국 닉은 아내 에이미와 다시 손을 잡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 세간의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아내와 연합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관계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또 이상을 지향한 관계에서 느낀 좌절을 잔혹한 방식으로 되짚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확증편향을 활용한 진실과 거짓의 혼란으로 그 관계의 허무함과 서늘함에 날을 세우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