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매드맨 1'
광고회사 스털링 쿠퍼를 대표하는 광고인 돈 드레이퍼. 그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설득력으로 클라이언트와 동료들의 신뢰를 얻지만, 동시에 과거에 대한 비밀을 숨긴 채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의 아내 베티는 겉으로는 완벽한 가정주부로 보이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회의로 인해 심리적 문제를 느껴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스털링 쿠퍼의 신입사원 페기 올슨은 비서로 고용됐지만, 우연히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 테스트에 참여했다가 날카로운 분석력을 선보이고 카피를 제안하며 남성 중심의 회사에서 이례적으로 재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회사의 유일한 여성 카피라이터로 직무를 전환, 남성들만의 세계로 여겨지는 그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며 커다란 도전과 변화를 경험한다.
한편, 회사의 파트너인 로저 스털링은 돈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둘은 함께 여러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회사를 이끌고, 메이저 회사가 아님에도 업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로저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건강 문제를 겪고, 이는 그의 삶과 회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미드 매드맨 시즌 1의 줄거리다. AMC 채널을 통해 2007년 7월 19일부터 방영을 시작해 총 7개 시즌으로 완결된 미드맨 시리즈는 2021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드라마 시리즈 2위에 오르고, 4년 연속 에미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한 몸에 받은 걸작으로 꼽힌다.
그토록 유명했던 매드맨.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첫인상은 무척 안 좋았다. 불편하고, 불쾌했다. 20세기 이후 인류 문명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뉴욕, 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야만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문란한 양복쟁이들의 이야기가 그 시절 뉴욕에 대한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킬듯 충격적이었다.
이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실제 살아온, 그 역사를 안고 있는 그들의 시선에 이런 노골적인 시대상의 묘사는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1960년대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의 낮은 인권의식과 상류 비즈니스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불륜을 비롯한 기만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들, 부와 성공에만 목마른 속물적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국 역시 68혁명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 기성 가치관을 거부하며 히피 문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드라마는 그 시절을 미화하는 대신, 그 부끄러운 사회를 똑바로 마주한다. 매우 사실적으로, 오히려 어떤 부정적인 면은 더욱 실제보다 선명히 그려내며 인물들의 정서적 혼란과 타락, 욕망 그 자체를 충실히 담아낸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어떤 인물들로,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스스로 타인의 삶을 훔쳐 성공을 좇는 돈 드레이퍼
매드맨이라는 말은 뉴욕 광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목처럼 이 드라마는 1960년대 스털링 쿠퍼라는 가상의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당시 광고계와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광고회사 스털링 쿠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돈 드레이퍼. 스털링 쿠퍼는 아직 메이저급은 아닌 광고회사지만, 돈은 이 바닥에 어디에서든 인정 받는 실력자다. 스털링 쿠퍼에서 그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며,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감춰진 비밀이 있다. 그의 비밀은 어느 날 그의 동생을 자처하는 남자가 나타나며 서서히 내막을 드러낸다. 어려서부터 그를 따랐던 어린 동생은 돈이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기사를 보고 그를 찾아온다. 하지만 돈은 동생과 거리를 두려 하고, 누군가 두 사람의 만남을 볼까봐 노심초사하며 얼마간의 돈을 건네며 더 이상 그의 앞에 나타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사실 돈의 본명은 리처드 딕 휘트먼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전투 중 사망한 선임의 신분을 훔쳐 미국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새 삶을 살게 됐던 것. 스스로 불우하다고 믿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새 삶을 살면서 과거와 완벽한 단절을 꿈꾼다.
그러나 그는 종종 당시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아름다운 아내 베티와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있지만, 돈에게 중요한 것은 일 뿐이다. 항상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고, 가정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 살아가는 삶에서 가정은 그에게 일종의 트로피와 같은 일부, 또는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아내를 동반하기 위한 도구쯤으로 보인다.
그런 돈의 내면은 공허하고, 그 때문인지 수시로 불륜을 저지른다. 시즌 1에서만 해도 히피와 어울리는 젊은 여성과, 고객이었던 유대계 백화점 CEO와 불륜을 저지른다. 특히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회사의 CEO인 로저 스털링의 더러운 일탈을 거들다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는 힘겹게 사태를 수습하고 불륜녀를 만나 아이처럼 매달린다.
돈은 불륜 상대방에게 종종 떠나자고 말한다. 그것은 일시적인 여행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랑의 도피를 꿈꾸는듯한 모습도 보인다. 로저 사건에서 갑자기 찾아간 백화점 CEO에게는 다 버리고 도망가자고 말하는데, 그녀는 돈의 내면을 꿰뚫는 한 마디를 던진다.
나와 떠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냥 도망치고 싶은 거잖아.
성공한 광고맨으로서 상류 비즈니스 사회를 즐기는, 그리고 더 큰 성공으로 나가고자 하는 야욕적인 인물, 돈. 하지만 남의 인생을 빌려 살며 내면의 혼란을 겪는 그는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갈수록 일상은 무너져가고, 내적 갈등은 심화된다. 끝내 그에게서 버림받은 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당장 자신의 과거가 밝혀질지 모르는 상황에 대응하기 바쁠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삶. 그래서 그의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불륜과 희롱이 아무렇지 않은 비겁한 남자들
앞서 돈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다른 남자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그는 굉장히 신사적인 편이다. 자신의 욕망(여성편력, 사회적 욕구)에 충실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윤리적 자존감은 있는 편이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듯하다.
이 회사에서 여성이 맡는 직무는 비서나 전화 교환원 정도에 불과한데, 그나마 총무비서 직무의 우두머리격인 조앤이나 어느 정도 입김이 있는 편이다. 그 외의 여성들은 사무직 남성들의 수발을 드는 역할이며, 성희롱의 대상일 뿐이다.
젊은 직원들은 모일 때마다 여직원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신입 직원이 오면 누가 꼬시나 내기를 하는 수준. 파티 때마다 각자 사내 이 여자, 저 여자 꼬셔가며 하룻밤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똑같이 응하는 여자 직원들의 모습은 더 보기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의 진짜 여주인공이라 할만한 페기는 비서직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데, 마침 당장 며칠 뒤 결혼을 앞둔 피트는 그녀를 꼬시지 못해 안달이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결혼한 상태에서 페기와 정사를 나누고, 임신까지 시킨다.
빈센트 카세이저가 연기한 피트라는 인물은 말 그대로 '찌질'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욕구는 하늘을 찌르는 이 드라마에서 제일 눈총 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성공을 위해 돈의 과거로 협박을 하고, 자신의 글을 매체에 실리게 해달라고 아내한테 부탁했다가 실린 지면이 탐탁치않자 화를 내는 그런 인물. 후에 점차 달라져가는 성장캐로 평가받긴 하지만, 시즌 2 중반까지는 거의 주요 빌런에 가까운 인물이다.
불륜과 관련해서는 복상사 위기에서 겨우 살아난 로저 스털링을 빼놓을 수 없다. 희대의 바람둥이인 그는 돈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물. 일단 조앤과 불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시즌 1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그의 심장마비 사건은 음흉한 의도로 광고 모델을 선발하고 그들로부터 일종의 성접대를 받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심지어 부인이 집을 비운 날, 돈의 집에 기어이 밥을 얻어먹겠다고 따라가서는 부하직원의 아내인 베티한테까지 수작을 부린다. 돈은 여기에 복수랍시고 엘리베이터맨을 매수해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고 고층빌딩을 늙은 로저가 걸어올라가게 만드는 짓을 한다. 상사의 더러운 행태에 진심으로 분노할줄 모르고 오히려 아내를 다그치다 제 기분에 유치한 복수를 하는 돈의 모습은 시즌 1에서 등장한 비겁한 남자들의 모습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힐만 하다.
입지전적 인물 페기, 외로운 베티...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드라마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이야기의 또 하나의 축은 페기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비서로 스털링 쿠퍼 사에 들어와 사내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립스틱 품평회에서 예사롭지 않은 평가로 기획자들의 눈에 든다. 그리고 이를 카피로 직접 장성한 것을 계기로 시즌1 막바지에 비서가 아닌, 정식 카피라이터로 승진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털링 쿠퍼 사의 첫 여성 카피라이터.
남성이 득세하고, 여성은 대상화가 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페기는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남성들의 세계에 진출하고 능력을 펼치는 의미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아직 내 눈에는 그녀에게 성장의 길이 여전히 먼 것만 같다.
스털링 쿠퍼에서 비서가 아닌, 내 일을 한다는 것은 나, 혹은 우리 팀의 방(대부분은 '내 방'이다)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방 앞에 앉은, 혹은 비서진, 타자수들이 일렬로 모인 가운데 한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역할을 인정받는 것이랄까.
그렇게 '공간'을 갖게 된 페기는 성적인 희롱만 없을뿐, 다른 남직원들이 여비서들을 대하는 것과 유사한 태도로 그들을 대한다.
동료였던 비서에게 전과 같은 태도로 대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조앤마저 그 상황 후 해당 비서에게 더이상 그녀가 페기가 아닌, '올슨 씨'임을 상기시킨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자신이 담당한 제품의 성우 모델로 섭외해놓고는 본인의 욕심만큼 나오지 않자 계속해서 다그쳐 끝내 울리고 만다.
어찌보면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인정해줘야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즈니스적 성공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남성 인물들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윤리적인 성적 일탈과 유희, 알코올과 담배로 나머지 삶을 채워가는 모습을 볼때, 페기는 남성문화가 가진 그 '나머지 삶'의 요소가 배제되었을뿐 성공만 바라보는 다소 비인간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과도하게 학습한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한때 동료였던 그들과 명확히 급을 나누고 선을 긋는 태도는 그녀가 남녀의 벽을 허무는 문제적 인물이 아니라, 아직 탈식민지화하지 못하고 식민자를 닮아가는데에만 몰입하고 있는 단계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드라마에서 또 한 명 눈여겨 봐야할 여성 인물은, 돈의 부인 베티다.
일단 베티는 페기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남편을 내조하며, 이따금 비지니스 등을 위한 자리에 동석하는 정도의 역할을 가진 전형적인 주부.
그녀는 대부분의 것을 남편의 결정에 통제 받고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갖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정신적으로 불안해하며, 우울증을 앓는다. 뭐든이 일이 우선이고 이성적으로만 상황을 대하는 돈은 어찌 보면 바쁜 와중에도 가정에 충실하려 노력하는듯 보이지만, 그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조차 베티가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납득하게 된다.
베티는 결혼 전 모델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를 빌미로 대형 광고회사에서 돈을 스카웃하려는 술수로 베티에게 코카콜라 모델을 제안한다. 내 일을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베티는 너무도 행복하지만, 결국 모델 탈락과 함께 그것이 술수일 뿐임이 밝혀지며 눈물을 흘리고 만다.
상황과 대응은 다르지만, 돈과 베티의 삶은 근본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다. 진정한 자아를 잃고 사회적 역할로 삶을 살며 내적 공허함과 불안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이러한 삶을 극적으로 선택했다면, 베티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평범한 가족인듯 서로를 대하고 함께 가정을 지탱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무너져내리게 될지 앞으로의 전개를 궁금하게 한다.
감추고, 포장하고, 빠져들다... 드라마 속 담배의 의미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남녀불문, 장소불문, 상황불문 끝없이 담배를 피운다. 밥 먹다가도 피우고, 정사하다가도 피우고, 사무실에서도 피운다. 이 회사는 사무실에서 수시로 술을 먹지만, 담배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드라마 1회에서 럭키스트라이크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담배가 몸에 유해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럭키스트라이크에 위기가 드리우는듯 하는데, 돈을 비롯한 스털링 쿠퍼사에서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회의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담배의 무해를 주장하는 대신, 담배를 매력적으로 포장하기로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문란하고, 비윤리적으로 느껴지던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1960년대들어 문화적 대변혁이 일어나던 것을 떠올린다면, 이 당시는 이미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밑바닥부터 무르익기 시작하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도 결국 그러한 문화의 붕괴를 눈앞에 둔 시기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들은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감추고, 포장해가며 이미 자신들의 일상을 지배한 담배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드라마에서 담배는, 이처럼 불합리하고 부끄러운 사회적, 문화적 세태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어 무던해지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감추려하던, 그렇게 타락해가던 그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7개의 시즌이 보여주듯 전 시즌을 통째로 다루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이에 시즌 1에 집중해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도와 설정들을 살펴봤다. 시즌 1은 앞으로 시즌이 진행되면서 현대의 시각으로 이렇게 비뚤어져 보이는 인물들이 어떻게 변화되어갈지 깊은 호기심을 유도한다.
* 이미지 출처: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