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술이 필요한 이유

티빙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

by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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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고 시니컬한 성격의 종이접기 유튜버 강지구, 백치미를 뽐내는 사차원 요가강사 한지연, 개그맨에 도전했다가 얼떨결에 방송작가가 된 안소희. 이들 세 명의 여인은 대학교 시절부터 술로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 술꾼들로, 서로 다른 전공에도 불구하고 술이라는 공감대로 오랜 기간 최고의 절친으로 지내오고 있다.


웬만한 남자는 명함도 못낼만큼 어마어마한 주량과 미지근한 소주를 별미로 여기는 독한 취향까지 무엇보다 술에 진심인 이들은 거의 매일을 셋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마감한다. 직장과 가족, 또 이성과의 관계 등 많은 사연과 상황들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친구들. 이들에게 친구와 술은 바로 인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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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서비스된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은 그런 세 친구의 인생과 술에 대한 이야기다. 카카오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술을 좋아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라는 설정만 가져왔을뿐 사실상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2021년 10월부터 시즌 1이 공개된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에 비해 부진을 겪고 있던 토종 OTT들의 반격을 알린 작품이다. ‘술꾼 도시 여자들’ 공개 이후 티빙의 드라마 유료 가입자 기여 수치는 4배 이상 상승했으며, 유튜브 하이라이트 영상의 경우 최대 130만뷰를 기록할 정도로 흥행과 화제성 모든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시즌 1 마지막 회차가 공개되기 전 이미 시즌 2를 준비할 정도로 그야말로 티빙의 최대 히트상품이자 대표작이 된 작품이다. 그리고 2022년 12월 드디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시즌 2 서비스를 시작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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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절친 사이인 몇 명의 미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는 제법 있었다. 보통 그런 드라마들은 직업적 성공과 연애, 그 사이의 소소한 여자들만의 일상적 장면들로 채워지기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1990년대 이후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 동안의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다른 여성 중심의 현실적 연애담과 확장된 사회 진출을 다루며 달라진 여성상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둔 드라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드라마 역시 언뜻 그런 사회적 맥락에서 크게 벗어난 이야기는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을 묶어주는 술이라는 매개체는 이들의 삶을 사회적인 부분보다는 적극적인 개인의 삶에 집중하게 하며, 기존 공중파 방송 등에서 다뤄지던 에피소드의 한계를 보란 듯이 깨트려버린다.


그렇게 종종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유쾌하고 시원하며, 사실은 너무도 솔직해 마음 한편이 아프기도 한 신선한 드라마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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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NO!! 꿈과 사랑은 멀고, 술은 가깝다


이 드라마는 까메오로 출연한 김지석이 세 명의 주인공과 차례로 소개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주당에 각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이들에 시달리는 남자의 모습은 엄청난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저 정도로 술을 먹어야 하나’라는 황당함이 코믹하게 그려지며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동안 시청자들은 그 기발한 유쾌함과 함께 군데군데 드러나는 단서들과 이상한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서들은 드라마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과거 이야기와 연결되며 비로소 이 작품이 단순한 코믹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시련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죽음은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는 요소로, 상처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지연과 지구가 겪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세 주인공의 지난 직업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지구는 과거 어머니의 뜻대로만 인생을 걸어오며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것으로 나온다. 당시에도 무뚝뚝했던 그는 성정체성으로 괴로워하던 제자가 자살을 선택한 일을 기점으로 교사를 그만두게 된다.


사고가 준 충격도 컸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제자가 죽은 상황에서 괴로워하는 딸에게 교육자로 성공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태도였다. 이 일로 지구는 곧바로 직업도 버리고 집을 떠나 은둔생활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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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미혼모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는 그가 아직 대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전의 어머니처럼 술을 사랑하며 밝고 천진하게 살아가지만 결정적인 때는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즌 2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지연이 암에 걸리는 설정도 등장하지만, 이내 그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여느 날의 삶으로 돌아온다.


반면, 소희는 드라마 스토리상 현재 시점에서의 죽음을 겪게 된다. 누구보다 돈독한 가족관계를 보였던 소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소희가 겪는 죽음의 이야기는 지구와 지연이 과거 겪었던 죽음에서 어떤 감정의 충격과 교류가 있었을지 가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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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미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지연은 그런 소희를 대신해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무너지는 소희가 상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평소와 다른 지연의 모습이 부각되지만, 지구, 그리고 작중 소희와 썸을 타는 중인 강북구 PD 역시 목사인 아버지를 소환하거나 일을 제쳐두고 발인까지 함께하는 등 극단적인 슬픔으로 치닫는 소희의 시련과 상처를 나눠 갖는다.


이 드라마는 흔히 술로 비유되는 인생의 쓴맛과 상처,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이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안고 사는 강북구, 소년원 출신이지만 종이접기 유튜버로 새 삶을 살고 있는 한우주 등 이 세 친구의 삶에 끼어든 이들도 서로 함께 하는 과정에서 위로 받거나 상처를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며 술 밖의 또 다른 이유, 또는 방식으로 힘겨운 삶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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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도시 여자들. 희로애락이 공존하지만, 사실은 씁쓸하고 짜증나는 일들이 더 많고 기억에 남는 우리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나누는 술 한잔의 즐거움으로 그 아픔들을 치유하고 버텨가는 그것이 인생임을 유쾌한 에피소드들로 꾸며가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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