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지옥을 알아본 두 남자의 비극

영화 '화란'

by 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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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 미래도 없는 마을, 명안시. 이곳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언젠가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떠날 날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17세 소년 연규가 살고 있다.


엄마의 재혼으로 의붓아버지, 그리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의붓남매 하얀과 좁은 집에서 살아가는 연규. 그의 의붓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며 연규를 괴롭히고, 그런 의붓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연규는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돈을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을 지키려다 싸움에 휘말린 그는 300만원의 합의금을 물어줘야할 처지에 놓이고, 그런 연규에게 지역 조직의 중간 보스인 치건은 아무 조건 없이 돈을 건넨다. 이 일을 계기로 치건의 밑에 들어간 연규는 오토바이 도둑질 등 각종 범죄에 가담한다.


큰형님의 사업에까지 연루되며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던 영규는 결국 큰형님이 한 식구로 의도적으로 키웠지만 배신해버린 정치인을 죽이고 돈을 빼앗아 오는 임무까지 맡게 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살인자가 되어버린 연규는 충격과 혼란 속에 사고로 돈까지 잃고 최악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치건은 그런 연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과도 등을 돌리지만, 상황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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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개봉한 송중기 주연의 느와르 영화, ‘화란’의 줄거리다.


송중기가 시나리오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건’에 초청되며 또 한 번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고, 관객들의 평가도 좋지만은 않았지만, 송중기 외 주인공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 가수 비비로 활동 중인 김형서의 연기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영평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쓰는 등 나름의 성과가 있기도 했다.


영화 '화란'은 이러한 모호한 성적 및 성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독특하며 또한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지독히 어둡고 씁쓸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15세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이 무색할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웃는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근래 들어 좀처럼 보기 힘든 무겁고 잔혹한 느와르라는 평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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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둡고도 잔혹한 이야기는 두 남자 주인공, 연규와 치건의 관계에 기반해 진행된다.


그들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어렸을 때부터 명안시를 떠난 적이 없고, 스스로 자신을 둘러싼 그곳을 지옥이라 여긴다. 사채업을 하는 냉혹하고도 잔혹한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이 아무 조건 없이 연규에게 처음 300만원이라는 거액을 건넨 것 또한 지옥을 견뎌내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모습의 그를 알아봤기 때문일 터.


그 때문에 이후로도 조직원들이 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불만을 품을 정도로 치건은 연규에게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호의를 베푼다. 돈뿐 아니라, 철저한 응징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봐주기 일쑤이며 마지막 최악의 위기에서도 어떻게든 연규를 구하려 애쓴다.




'날 닮은 너'를 바라보는 그 남자의 위태로운 시선


하지만 두 사람의 지옥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연규의 지옥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다.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종의 비유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러나 치건의 지옥은 그의 삶 자체이며 벗어날 수 없다.


치건이 지옥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식당에서 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저수지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했을 때다. 그는 자신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우연히 죽어가는 그가 큰형님의 낚싯대에 걸리면서 새 삶을 살게 됐다. 그때 그는 스스로 이미 죽었다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치건은 죽음 이후 맞이한 지옥의 세계를 온전한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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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에게는 화란이라는 이상향, 희망이 있다. 그러나 치건은 그런 연규에게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있냐고 되묻는다. 그는 연규의 희망이 헛된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들이 처해있는 이 세계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옥을 잘 알고 있기에 치건의 속내는 연규가 이 지옥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모르는 연규가 일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몸담은 세계의 잔혹함을 일깨워주려는 치건의 노력은 자신과 같은 지옥에 빠져들지 말 것, 그리고 그 지옥을 선택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행위와 같다.


많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했던 후반부의 다급한 전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치건의 메시지를 이해하기에 연규는 실제 나이로나 경험적으로나 어리다. 그러나 치건 역시 연규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야 할지 명확한 방향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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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런 아슬아슬한 줄타기 상황에서 마주한 결정적인 사건은 갈팡질팡하던 치건에게 결심을 요구한다. 지옥의 원리에 연규를 맡길 것인가, 그를 이 지옥에서 구해낼 것인가. 그 압박 속에서 치건은 냉정을 잃고,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연민으로 연규를 보았던 자신의 진심을 인정해야 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연규의 폭주,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차마 냉정할 수 없었던 치건의 진심은 그렇게 충돌하고, 사건은 소용돌이치듯 절벽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치건은 마침내 연규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며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옥과 구원의 모호하고도 슬픈 이중주


연규는 치건에게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었다. 지옥을 벗어날 방법은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연규가 결국은 그 지옥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을 닮은 연규가 끝내 화란에 닿게 된다면, 그것은 빛 한 줌 없는 지옥에도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그 희망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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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치건의 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눈으로 그 희망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대신 치건은 연규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의 자신이라 믿었던 연규를 통해 죽음이라는 형태로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치건의 죽음 후에도 영화는 결국 연규가 하얀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명안시를 떠나는 장면으로 가능성을 열어 둔다.


연규를 만나 비극적인 구원을 맞이한 치건. 그렇다면 과연 연규는 치건이 바랐던 진정한 구원을 찾았을까. 벗어날 수 없는 지옥,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이미지가 모호하게 공존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그들이 겪은 실체적 지옥만큼이나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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