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세요
만약 내가 약 20년 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 글을 보았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많은 경우 콩깍지가 쓰인 상태에서는 그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실 나는 국제결혼 후 꽤 오랫동안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고 그간 단 한 번도 국제결혼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종종 주변에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물어온다. 국제결혼 괜찮은가요?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할 뿐. 그런데 과연 그게 다일까?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대답은 'No', 실제로 주변에 이혼하는 케이스를 많이 봐 온 나는 이제 국제결혼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보통의 결혼에도 이혼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국제적인' 이유가 이혼사유는 아니리라. 무엇이 국제적인 이유인지는 아래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국제결혼에 적합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젊음의 치기에 사랑으로 뭐든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도 그랬고- 적어도 다가올 먼 미래에 대해서 한 번쯤은 깊이 고민해 보고 결정하기를.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도 생겨날 수 있다면 하는 바람도 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할 뿐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밖에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결혼은 현실이다. 물질보다 사랑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지만 물질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물질 이상으로 중요한 것도 있다. 부부의 사랑 외에도 가족과 친구,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추억하는 생물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과거를 추억하고 고향을 그리워한다. 젊은 한 때 집과 가족을 떠나 그리고 어릴 적 살던 동네 또는 국가를 떠나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회귀본능[回歸本能]이 있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20대 때 이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다. 어디에 가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고 오히려 새로운 세상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단언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득실이 있는 선택이었다. 마흔이 훌쩍 넘으니 나는 집이 그립고 고국이 그립다. 하물며 결코 메꿀 수 없는 '나 없는 한국'의 시간들이 서럽도록 그립다. 예를 들어 나는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인의 정서를 모른다. 그 시기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우려먹는 그 뜨거운 애국심을 나는 막연하게 뜨거울 뿐 교감할 수 없어 아쉬워하곤 한다.
부부 외의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도 중요하다.
결혼생활이 주야장천 새롭고 행복할 순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이 아무리 오래 또 많이 사랑하는가 와는 관계없이 사랑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 부부의 사랑에서는 현실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이 아닌 같은 국적의 남자 여자와 결혼해 살아도 이 점은 같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남편(아내) 외에 다른 사람들과도 깊은 관심을 주고받으며 지속적인 정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제결혼을 하면 불가능할까? 가능하지만 완전할 순 없다. 새로운 터전에서 좋은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새 가족(시댁 또는 처가)들과 어울려 살 수 있겠지만 세월이 더해질수록 내 가족과 옛 것이 그리운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나도 결혼 초기에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어른들을 부정하곤 했지만 말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모두 다르고 개척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중국 생활에 꽤 잘 적응하는 쪽이었고 여전히 중국친구들도 한국친구들도 많은 편이다. 덕분에 오랜 시간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지만 한편 그들이 채워 줄 수 없는 외로움이 있음을 발견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사춘기 소녀처럼 그 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녹록지 않다면?
게다가 해외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더더욱 뜯어말리고 싶은 게 국제결혼이다. 실제로 신혼 때 만난 한중커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별거 중이거나 이혼을 했다. 그중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고 다행히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온한 가정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타격이 꽤 큰 편이다. 그나마 한중커플은 비행기 티켓이라도 저렴하지. 사는 것이 퍽퍽해지면 문제가 아닌 것들도 곧 문제가 된다.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언제나 '이방인'이니 둘 중 하나는 언제나 삶이 삐걱거린다. 실제로 취업이 어렵고 의료보험 양로보험 등 포기해야 할 혜택들도 있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제커플을 위해 현실이 조금 느슨해진다면 모르겠다.
평범한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꿈꾼다.
내 경우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고 남편은 가정적이고 누가 봐도 문제없는 한 가정의 책임감 강한 가장이다. 주변에 각별한 친구들도 있고 팍팍했던 시댁도 최근 몇 년 나를 편하게 해 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종종 이혼을 꿈꾸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고 심지어 한국에 가서 사는 것도 지지하지만 나에게는 남편에게 외로울 한국땅을 고집하는 것 또한 어려운 선택이다. 그런 이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은 단지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미래라는 생각도 든다. 남편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나도 이제 평범한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남편과는 큰 문제는 없으니 오해는 말기를.
사실 처음 결혼생활을 할 때만 해도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기만 했다. 운 좋게 현지의 좋은 직장에 들어가 10년 동안 근무하고 밝은 성격 덕에 한국 친구들 뿐만 아니라 현지 친구들도 제법 사귀었다. 비록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적잖은 혼란도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자라주어 곧 독립할 나이가 될 것인데. 아이에게 또 다른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던져주게 된 것 역시 미안한 마음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 흘러 나는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곧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
여기까지 읽으면 왜 구태여 국제결혼을 반대하는지 여전히 감이 안 올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친구도 많다면 굳이 왜 국제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힘겨울까? 보통의 결혼도 이 정도 어려움은 있어 보인다. 이제부터 왜 내가 국제결혼을 반대하는지 세 가지 이유로 깔끔하게 정리해 보겠다.
첫째,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어디가 되었던 결국 한 나라에 정착해야 한다. 70,80 노인이 되어 자유롭게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다면야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둘 중 하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가 좋고 다양한 삶을 추구할 젊은 나이 때에는 '그 정도쯤'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예전 같지 않기 시작하면 우린 결국 익숙한 곳을 선호하게 된다. 요즘 세상 비행기 한 번이면 쉽게 오갈 것 같은가?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다. 한국 집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 내가 과연 얼마나 빨리 달려갈 수 있을까? 과거 코로나19 때를 생각해 보자. 다시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있다.
둘째, 첫 번째 이유는 그나마 나를 위한 걱정이다. 이번엔 우리의 자녀문제로 넘어가 본다. 내 경우 이 부분은 미리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내 자식이 외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들 말이다. 마치 내가 내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내 딸 또는 아들을 가까이에 두고 살 수 없는 가능성이 꽤 높다는 사실. 나와 내 엄마처럼 내 딸도 나와 떨어져 지낼 가능성이 높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아이는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중 사춘기가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 순수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면서도 사춘기는 혼란스러운 시기인데 두 가지 국가 정체성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어디 쉬울까? 또한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적지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은 어떨까? 아무리 이중국적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도 아빠 나라던 엄마 나라던 아이는 결국 한 나라에서 양육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거칠 것이다. 적지 않은 경우 아예 제3의 국가를 선택하기도 한다. 내 경우 노후는 한국에서 살 계획이 있지만 딸아이를 생각하면 이마저 쉽지가 않다. 차라리 아이가 아주 평범했다면 좀 더 수월할 수도 있었을까. 아이는 중국에서 가장 좋다는 예중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향후 음악 전공으로 미국 유학을 갈 계획이다. 아이 본인의 꿈이었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이 초등학교 시절 나는 제주도의 삶을 꿈꾸며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의 시골 학교들을 둘러봤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악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중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도 아닌 한국도 아닌 곳에서 살겠다고 한다. 물론 아이의 삶은 아이가 결정하는 것으로.
다만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중국에서 자란 아이'는 외국인과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거다. 심지어 중국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내가 엄마가 그립고 가족이 그리워도 맘껏 볼 수 없는 것처럼 내 딸아이도 그리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나 젋었을 때처럼 현재 아이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못할 외로움이겠지만 말이다.
세 번째, 역시 젊었을 때는 미처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서 노후가 철저히 보장되는 경우라면 다를 수 있을까? 어디에서 늙어 생을 마감하던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타지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치매라도 걸리면 어떨까? 내가 중국어를 철저히 망각하면 어떻게 될까? 참고로 남편은 한국어를 못 한다. 시설이던 병원이던 말은 통해야 할 텐데. 비행기도 못 탈 정도로 늙어 남편과 나 우리 중 한 사람은 결국 타지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너무나 서글프다. 딸아이 하나 있는 거, 의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그저 자기 하나 건사하며 잘 살아주면 그만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날 수는 없을까? 남는 사람이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신분이면 또 어떡하지? 이쯤 되면 고국에 돌아가도 집도 친척도 없을 수 있다. 비행기도 자유롭게 탈 수 없는 아흔의 몸뚱이라면 또 어떠한가. 물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이 쇠약해질수록 자신할 수 없는 부분임은 틀림없고.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도 국제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내가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일까? 오히려 너무 오래 대책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이상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를 꼽아봤다. 모두 내가 신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들이다. 내가 외롭거나 내 딸이 외롭거나 우리 둘 중 누구 하나는 타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생각보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아직은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하니 살 만 하지만 위에서 거론한 세 가지 이유, 과연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일까? 누군가는 말하겠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내 나라에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외롭고 쓸쓸할 나의 반쪽은 어떡하란 말인가? 그저 반쪽짜리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같이 느껴진다.
사랑에는 분명 국경이 없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에는 분명 국경이 없다. 아니 오히려 국제결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커플들이 주변에 많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임을 잊지 말자.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비단 물질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오히려 물질적인 부분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겠지만 필연에 의한 정신적 문제는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물론 지금 이 글을 보고 전혀 공감할 수 없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라'라는 마음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까. 반대로 같은 나라 사람과 결혼하고 살아도 충분히 불행할 수 있고 외로울 수 있다. 다만 나는 확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경 없는 사랑을 선택했다면 젊었을 때 반드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이루시기를. 그것도 아니면 슈퍼바디를 만들어서 절대 질병에 걸지리 말기를. 다만 후자는 불가능하며 전자가 그나마 쉬운 편이겠다. 물질(돈)이 정신을 이길 수는 없지만 물질(돈)이 없으면 정신도 버티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파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수시로 해외를 오갈 수 있는, 어느 곳에서나 안정적인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응원한다.
사실 국제결혼은 나에게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한 인간으로서 더 많이 성장했고 더 많은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넉넉한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이 맞다. 지금 나에게 목표가 있다면 위의 세 가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는 경제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노후생활을 위한 탄탄한 경제력과 최대한의 열린 마음이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이 글이 국제결혼을 결심한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헤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과 육아, 노후까지 생각해 보고 그에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 때는 국제결혼이 드문 케이스였기에 곁에 충고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르다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준비된 마인드를 가질 수 있기를. 문화적인 차이와 성격적인 차이는 이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이 글에서는 다루지도 않겠다. 포기와 선택의 한 끗차이는 최선의 유무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고민하는 당신, 충분히 고민하고 현명한 선택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