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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22. 2024

눈물의 여왕 홍해인의 선택

기억을 잃는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까? 


당신이 주신 내 인생을 돌아보면
 소중한 건 두 가지뿐입니다.
사랑했던 기억과 사랑받았던 기억.
-드라마 <눈물의 여왕> 홍해인 대사-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여주 홍해인(김지원 분)의 대사이다. 홍해인은 백현우(김수현)와 사랑하는 사이인데 시한부 선고를 받고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 수술을 하면 살지만 기억을 잃을 수 있고, 수술을 포기하면 삶도 포기해야 한다. 이례적으로 이번엔 주인공이 '기억상실'을 선택할 수 있다. 이에 홍해인의 가족과 남편 현우는 그녀가 수술대에 오르기를 바라지만 홍해인은 기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당연히 삶을 선택해야 맞잖은가? 남편은 어쩌라고, 가족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죽는 거보다는 나쁜 기억 싹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 나쁘지 않잖은가? 게다가 부자에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있어줄 거고. 대체 어째서 과거의 기억 따위가 생명보다 소중할까 싶었다. 


설거지를 하며 드라마를 시청하던 나는 홍해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연신 투덜거렸다. 이때 고등학생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묻는다. "엄마, 뭘 혼자 그렇게 궁시렁대?" 마침 개운하게 끓고 있는 콩나물국을 마저 담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하며 나는 아이에게 드라마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문득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만약 당신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수술을 하면 살지만 기억을 잃는다고 가정하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딸아이는 당연히 수술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아이의 대답에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물었다. "왜? 어째서?" 곧이어 아이의 입에서 홍해인이 했던 대사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아이는 '기억이 없다면 살아도 내가 사는 게 아니라고'한다. 나는 그래도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나라면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며 격양된 말투를 이어갔다. 국그릇 속 콩나물 대가리가 맥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 그리고 엄마 말처럼 수술을 했고 기억을 잃었지. 그런데 엄마가 회복하는 사이에 엄마 딸이 사고로 죽은 거야. 아빠를 포함한 엄마 가족들은 엄마가 깨어나서 알게 되면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엄마가 깨어난 후 과거 엄마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겨..." 


순간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졌고 떨어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대낮에 콩나물국을 먹다가 울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내 눈에는 새끼 잃은 에미만 보였고 정작 죽어가는 자식의 마음이 안 보였던 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라는 아이의 마음을 말이다. 그런데 내가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내 새끼를 기억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울다가 웃으면 좀 그렇다지만, 나는 마르지 않은 눈물을 쓱 닦고는 당황한 아이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왜 울었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아이의 마음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홍해인이라고 가정했을 때에도 오로지 에미의 입장에서 삶을 선택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엄마였지만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줄 수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의 비유에 눈물을 쏙 뺀 나는 곧 아이에게 소설가가 돼도 좋겠다며 칭찬을 했고. 우린 남은 콩나물국을 시원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눈물의 여왕 홍해인은 수술 후 기억을 되찾게 될까? 드라마이니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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