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상담 3회기: 천재견 롱롱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by 바람꽃


상담일자: 2023년 4월 X일

내담견: 롱롱이

견종: 미니어처 푸들 (그냥 스탠더드로 침)

연령: 8세+ (중년)


상담사: 오늘 기분 좀 어때요?

내담견: 오늘은 정말 최악이에요.

상담사: 괜찮아요, 일단 간식부터 드세요. (간식 하나 건네주니 개신남)


롱롱이 상담내용


아빠 보호자는 제가 천재인 줄 알아요. 사실 저는 평범한 푸들일 뿐이죠. 스탠더드 푸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런데 아빠는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에게 많은 걸 요구했어요. 뭐든 해 낼 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얻긴 했지만 성과 없이 주어지는 게 없었어요. 심지어 눈앞에서 간식을 줬다 뺏기도 하고 (흐느낌)...... 틈만 나면 언니 보호자 책을 꺼내 들고 제게 질문을 쏟아냈어요. 혀로 코를 핥아봐도 꼬리를 돌돌 말아봐도 아빠 보호자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때때로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심하게 끙끙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제 자존감은 바닥을 쳤죠. 그만하자고 달래도 긴 하품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여기저기 간지럽고 책 볼 땐 털꼬임도 더 심해져요.


종종 엄마 보호자가 다가오면 그 뒤로 숨어봤지만 이내 아빠 보호자에게 앞다리를 끌려 제자리로 돌아오죠. 가끔은 흥미로운 과제도 주어지지만 제가 조금만 잘 해내면 아빠는 제게 더 어려운 문제를 내요. 특히 컵 속에 간식을 찾아먹는 건 정말 재밌어요. 냄새 맡는 건 제 특기거든요. 비록 처음 종이컵을 뒤집는 데는 한참이 걸렸지만 말이죠.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종이컵 틈새로 흘러나오는 냄새는 정말...(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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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엄마 보호자가 장난감을 사 왔어요. 궁금해서 한참 들여다봤는데 안은 텅 비어있고 말랑말랑했죠. 엄마는 곧 장난감 안에다가 귀중한 간식을 넣었어요. 와우. 신박했어요. 어서 빨리 간식을 꺼내먹고 싶었죠. 혓바닥도 넣어보고 요리조리 흔들어도 봤어요. 간식이 혀에 닿을락 말락 할 때의 쾌감이란! 선생님도 한번 해보세요. 딱 제 스타일이었죠. 저는 장난감이 너무 좋았어요. 엄마 보호자는 종종 외출하기 전에 간식을 넣어두곤 하는데 먹느라고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돌아오죠. 엄마 보호자는 제 마음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렇게 최근에는 엄마가 사 온 장난감 덕분에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아무래도 아빠 보호자는 저에게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데 잘할 자신이 없어요. 이제는 책꽂이에 책만 봐도 토 나올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오늘 잘 좀 말씀해 주세요.


아빠 보호자 상담내용


(두리번거리다 귓속말로) 이건 비밀인데, 롱롱이는 아무래도 천재견인 것 같아요. 롱롱이 엄마는 푸들이 원래 똑똑하다고 하지만 저는 태어나서 롱롱이처럼 말귀 잘 알아듣는 녀석은 처음 봤어요. 아 물론 가끔 전봇대에 개줄이 감기면 반대쪽으로 도는 바람에 제가 애를 먹지만. 그럴 때 보면 바보가 아닌가도 좀 의심되지만 말이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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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녀석은 제가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사람책을 그렇게 잘 알아들을 수 있죠? 제가 질문을 하면 세상에 손을 들어서 반응도 해요. 선생님은 이런 강아지 본 적 있어요? 종이컵 간식은 또 얼마나 잘 빼먹는지 몰라요. (슬그머니 다시 귓속말) 게다가 롱롱이는 2개 국어를 해요. (자랑스러운 표정) 얼마 전 롱롱이 엄마가 마련한 노즈워크 장난감은 또 어떻고요. 순삭으로 간식을 빼먹는데 선생님이 그걸 보셨어야 해요. 아무래도 영재학교를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 중인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담사: 글쎄요. 롱롱이 의견도 들어봐야겠죠?


상담사 소견과 처방


내담견 롱롱이는 최근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아빠 보호자는 롱롱이가 천재견이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하지만 아직 롱롱이가 원하는 바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엄마 보호자가 반려견 전용 노즈워크 장난감을 마련한 것인데, 당분간 롱롱이에게 새로운 자극보다는 노즈워크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권해본다. 마지막으로 아빠 보호자에게는 반려견 언어 학습을 과제로 남긴다. 예를 들어 혀로 코를 핥는다던가 하품을 한다면 하던걸 멈추고 롱롱이에게 시간을 주기 바란다.


학습시간(놀이시간) 단축

카밍 시그널 익히기 (출처: Lili 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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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외 수다:


그런데 사실 제가 쫌 똑똑하긴 해요. (귀를 쫑긋 세우고) 이건 비밀인데 제가 2개 국어를 하거든요. (개웃음) 엄마 보호자 말과 아빠 보호자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엄마는 그게 신기한가 봐요. 사실 별로 어려운 건 아닌데, 제가 엄마말을 알아들으면 갑자기 돌고래소리를 질러서 저를 놀라게 하죠. 엄마 보호자가 기뻐하면 저도 기뻐요. 제가 만약 말도 할 수 있게 된다면 당장 엄마에게 말할거예요. "엄마 엄마, 엄마하고 산책할래요. 엄마가 너무 좋아요. 엄마 엄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제 옆에 있어주세요."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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