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결벽증
먼저 위생 관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위생 상태를 표시할 때 '매우 더러움-더러움-보통-깨끗함-매우 깨끗함'으로 나눈다. 여기서 양극인 매우 더러움과 매우 깨끗함에 대해서는 일단 언급하지 않겠다. 최소한 그 둘은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통인 상태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위생 상태는 과연 보통일까? 입장 차이를 철저히 배제한 편견을 보태자면 우리는 분명 깨끗한 상태를 선호한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없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편의를 위해 깨끗한 상태를 지금부터 깔끔한 상태로 바꿔 불러보겠다.
나는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하지만 상대에 따라서 조금 지저분한 편 또는 매우 깔끔한 편으로 나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나의 깔끔함은 상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나보다 깔끔한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기보다는 나보다 지저분한 편인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치 내가 덜 깔끔한 상대에게 '당신 너무 지저분하니 당장 치우세요'라고 속삭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한 마디 한다. "너무 깔끔 떨지 마." 이것도 부족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동조를 구하는 한마디를 보탠다. "쟨 너무 깔끔 떨지 않니?" 순간 나는 나의 위생 관념이 깔끔과 결벽 사이에서 급격히 결벽으로 승격됨을 느낀다. 물론 결벽이란 '지나침'이 담긴 뜻이지만 여기서 결벽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관점이니 내 입장에서 보면 결벽은 분명 승격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깔끔하지 못한 경우 편안해하고 '더 깔끔한' 경우에는 오히려 경계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일까? 참 이상하다. 한 번은 동네 친구 -정확히 말하면 딸아이 친구의 엄마-와 차 한 잔을 하기로 하고 우리 집으로 초대했을 때다. 사실 그날 내 기준에는 우리 집 위생상태가 그다지 양호하진 않았지만 나름 정리정돈을 하고 창문을 열어 시원하게 환기를 한 후 손님을 맞았다. 초인종이 울리고 그 엄마에게 문을 열어주자 첫마디가 '와~ 집이 너무 깨끗하네요'라는 감탄사였다. 나는 으레 하는 인사려니 했고 우리는 나름 즐겁게 티타임을 가졌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우린 또 티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고 이번에는 그 엄마가 적극적으로 나를 초대를 했는데 그날 이후 티타임은 늘 그 집에서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 엄마와 조금 친해진 후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집이 너무 깔끔해서 부담스러웠다고 하더라. 물론 그 집은 분명 깨끗하지 않은 편에 속했으리라.
그렇다면 결벽과 깔끔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그 거리는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도덕'이라는 단어를 결벽과 대체해 봤다. 마찬가지로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정직하게 사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편 내 주변인들을 통틀어 봤을 때 어쩌면 나는 도덕 결벽증이 있어 보일 정도지만 내가 또 다른 그룹에 속하게 될 때면 그 안에서 나는 결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나는 스스로 매우 평범한 정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종종 악몽이 되어 떠오르는 사건이 한 가지 있다. 트라우마로 남은 셈이지만 이렇게 수시로 꺼내놓을 수 있는 걸 보니 이제 회복기에 있나 보다. 약 10년 전쯤 나는 인터넷 모 커뮤니티 카페지기를 했던 적이 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조심스러웠지만 흥미로웠고 실제로 그때 만난 친구들 중 지금까지도 꾸준히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 몇 명이 힘을 합쳐 나를 밀어냈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그들의 왕따 표적을 감싸주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들은 정확히 말하면 세 명이었는데 나에게 '너도 그 사람을 싫어하면서 위선적으로 구는 것'이라고 말하며 나를 몹시 비난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위선적'이라는 말을 들어봤고 그 후로도 종종 그 단어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들의 눈에는 나의 그런 모습이 몹쓸 도덕 결벽증 쯤으로 보였던 것일까?
내가 위선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나는 다행히 그때 사건으로 침체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그런 면이 있음도 알아챘다. 물론 그렇다고 나는 그런 나의 행동을 위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대상이 실제로 성품이 훌륭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내향적이어서 오해를 부르는 성격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경우가 다수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마녀사냥을 할 생각이 없다. 필요하다면 내가 느낀 점 또는 불편함을 말이나 글로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누구를 대신하거나 대표해서 의견을 전달하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부득이하게 다수와 맞설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지금의 나는 단지 깔끔한 편이고 도덕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