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충전 중
살면서 종종 우리는 충전이 필요하다. 심리적인 내상을 입거나 단순 피곤이 누적된 경우 모두 충전이 필요하다. 이중 단순 피곤이라면 휴식만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심리적인 내상의 경우 충전의 방식과 기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민감한 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든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니 각자의 방식을 터득해 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문득 나는 그간 나의 충전 방식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째서 나에게는 같은 상처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걸까? 차분히 앉아서 생각해보니, 장기적인 효과보다 소극적이고 의존적이더라도 빠른 충전 방식을 선택했던 게 문제였다.
과거 마음이 아플 때면 나는 가까운 곳에서 감정 쓰레기통을 찾았던 적도 있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무감각해지려 한 적도 있다. 때때로 고통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면 마치 죽은 것처럼 긴긴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늘 잠시 뿐이다. 물론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나 역시 신앙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이 역시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오진 못했다.
그렇게 지금에 와서 내가 얻은 몇 가지 결론은 이렇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중심이라는 것이며 최대한 외부로 인한 타격을 덜 주고받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의 목적은 타인의 사과와 용서 또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사과를 받게 되더라도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1. 기꺼이 충전의 시간을 허락할 것 (감정관리)
2. 함부로 감정 쓰레기를 비우지 말 것 (말조심)
3. 감정이 요동칠 땐 그 어떤 결정도 미룰 것(위험관리)
4. 상처의 동굴(집)에서 산뜻하게 차려입고 외출 (전환점)
5. 가능하다면 운동 또는 노동으로 땀을 흘릴 것 (엔도르핀 생성)
6.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할 것 (먹고 자고 쉬고)
사실 매우 흔한 방법들이지만 그간 나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늘 불편한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었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최근에 깨달은 점은 고통이 왔을 때 그것에 잠식될 거란 불안감을 떨치고 기꺼이 충전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착하지도 저항하지도 회피하지도 말고 그저 구름처럼 흘러가는 그 모든 감정을 바라볼 것, 그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위의 몇 가지 중 실행 가능한 것을 실천하면 도움이 된다.
그중 6번째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예를들어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회사에 가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야 할 때 등을 말한다. 특히 혼자가 아닌 가족과 아이가 곁에 있다면 경솔한 일탈은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기도 하니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때 흥미로운 점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아도 결국 해낸다는 것,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어른됨의 책임'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최소한의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간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대략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모두 지나가고 살아있기만 한다면 고통은 365일 계속될 리가 없다. 그러니 무너질 때마다 올바른 방식으로 충전을 하도록 하자.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이 글을 쓰며 나는 또 한 번의 내상을 치유하고 마침표를 찍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