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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y 19. 2024

브런치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방치된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건 정확히 지난 4월부터이다. 짧다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글쓰기에 대해서 나는 벌써 몇 번의 심경의 변화를 경험했다. 현재 브런치는 나에게 크게 두 가지 기능을 제공한다. 첫째 글쓰기 기능, 둘째, 커뮤니티 기능. 내가 처음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던 동기는 무엇이었던가? 오늘은 브런치에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브런치 작가라면 어쩌면 누구나 거쳐갔을 과정이겠다. 참고로 지금부터 내가 쓰려는 글은 '모순 충만한 글'이 될 수도 있으니 불편한 말에만 꽂히는 부정편향을 잠시 내려놓고 읽어주길 바란다.


현실적인 이유와 이상적인 목표는?


사실 처음 브런치에 접근했던 마음은 애드센스 수익형인 정보성 글쓰기에 신물이 나서였다. 동시에 오랜 시간 간직해 온 글쓰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업을 내려두고 베짱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애드센스 글쓰기는 꾸준함만 있으면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하는 만큼 벌 수도 있다는 매력적인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내려놓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누구든 1만 시간, 즉 매일 3시간씩 투자해서
10년이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 이상훈 작가 -


그러던 어느 날 책 <1만 시간의 법칙>과 <레이트 블루머>를 보고 더 이상 글쓰기의 꿈을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만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보자. 그렇게 시작한 게 브런치 글쓰기다. 그렇다면 브런치에서 궁극적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출판의 욕심이 없다고? 그건 아니다. 다만 어떤 장르의 글로 책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5년 정도의 글쓰기 수련기간을 거치고 싶다. 아직 경험은 없으나 지금 실력으로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건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해지기 때문이다. 좀 이른 김칫국이긴 하다.


그런 이유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과 가능하다면 창작의 고통을 씹어보고 그때 도전하고 싶은 것이 바로 출판의 꿈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믿거나 말거나 나는 원래 체질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두려움)이 있다. 둘째, 나는 책으로 돈을 벌 목적이 없다. 이 말에는 나의 주 수입원은 결코 책이 아니어야 한다는 바람이 들어있기도 하다.  


결국 나는 현실적인 이유와 이상적인 목표와의 합의점을 찾기에 이르렀다. 애드센스 최저수익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브런치에서 글쓰기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브런치를 찾아온 이유이고 목적이다.  


커뮤니티 기능 어디까지?


위 단락에서 밝혔듯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목적은 바로 글쓰기였다. 그런 이유로 처음 댓글 설정을 할 때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구독은 객관적 평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로필 사진을 내 얼굴로 바꾼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는데 다른 작가님들의 얼굴을 보고 결정하게 된 것 같다. 당신도 마음을 열었으니 나도 마음을 열겠다는 진정성의 의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 며칠 또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부터 쓸 내용에 대해 브런치 이웃들의 오해가 없기를. 오늘 쓰는 글은 왠지 조심스럽다.


애초에 커뮤니티 기능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웃 브런치 글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실제로 읽기 위해 쌓아둔 책이 산더미였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또 디지털 노마드로써 나의 역할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들 비슷하리라. 그런데 문제는 내가 원래부터 소통적 인간이었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하면 나는 태생부터 수다쟁이다.


강력한 인간관계로 가는 열쇠는
혼란스러움이 쥐고 있다.
-발달신경과학자 에드트로닉-


다음과 네이버 카페 등 커뮤니티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카페지기 또는 운영진이 되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적극적인 인간관계는 마치 양날의 칼 같다. 오늘 아침 명상에서 그러더라. 어쩌면 우리는 균열과 상처가 없는 관계를 바라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갈등과 상처를 통해서 관계는 단단해진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평생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상처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이에 움츠러드는 것 역시 당연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사실 과거의 나는 튀는 것을 꽤 즐겼고 어쩌면 나의 무의식은 여전히 이를 즐길 수도 있지만 나의 경험치는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상처받을 줄 알면서 다가가는 건 몇 배의 에너지를 요하기 때문이다.


상처받는 것만큼 두려운 건 상처 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지만 종종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구독과 라이킷의 예를 들어볼까? 그게 뭐라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내 경우는 이렇다. 누군가의 댓글에는 바로 할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또 누군가의 댓글은 따뜻하고 감사하지만 굳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왠지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나는 그저 마음이 가는 데로 라이킷은 자유롭게 댓글은 신중하게 구독은 천천히 하고 싶다. 특히 대댓글에 의무성을 갖고 싶지 않은데 아직은 쉽지 않다. 물론 내 경우다. 이참에 댓글에 대한 마음을 적어본다. 침묵이 부정은 아님을, 나의 침묵이 누구에게든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본다. 역시 관계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부터 제법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최근 참여한 책모임과 엄마밴드에서 알게 된 인연은 책과 음악이라는 주제를 공유할 뿐 가까워지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까지 이름과 책 나눔, 연습 외에는 사적인 것도 묻지 않는 편이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 두고 만나고 싶은 이유이다. 브런치를 통해서 역시 새로운 인연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중 선물 같은 시낭송 매거진은 나로 하여금 소통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결국 관계는 지속돼야 한다. 다만 시그널과 타이밍 그리고 속도가 중요하며 관계의 중심은 타인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가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커뮤니티 기능이든 글쓰기 기능이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초심을 다져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본다. 나의 열정이 지치지 않도록 말이다.  


브런치에서 무엇을 쓸까?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글을 쓸 것인가? 브런치에는 어떤 글이 어울릴까?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먼저 브런치 이웃들의 글을 둘러봤다. 100인 100색이라지만 대체로 문학 비문학으로 나눌 수 있었다. 문학은 에세이 분야가 눈에 띄게 많았고 간혹 반갑게 시를 쓰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어제 딸아이와의 대화에서 내가 대체로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무장해제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니 그건 엄마의 편견이라며 역시 F란다. 딸아이는 자칭 MBTI 전문가다.


예술의 본질은 시(詩)다.
-M. 하이데거-


그래 좋다. 그럼 일단 치유의 시를 쓰자. 아직 시를 잘 모르지만 몇 편의 시를 쓰면서 느낀 점이 있다. 시에는 내가 평소 숨기고 싶었던 감정들을 오롯이 녹여낼 수 있다. 단순히 스토리를 붙이거나 떼내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담아내면서도 나의 사생활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점이 좋다. 내가 쓰는 것은 허구일 수도 사실일 수도 있지만 거짓은 없어서 또 좋다. 감정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또한 시는 전체에 대한 이해이다. 운율이고 노래이기 때문에 그중 한 마디만 좋거나 싫지도 않다. 시는 자유롭기 때문에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평판할 수 없음도 매력적이다. 써놓고 보니 시가 좋은 점이 많구나.


시 외에도 에세이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단 가능하다면 최대한 힘을 빼고 에세이를 쓰자. 결국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덜어내고자 결심한 건 '지식의 짜깁기'다. 글쓰기를 할 때 단어와 개념을 찾아보는 것 외에 지식과 정보를 담는 건 최소화해야겠다. 정보성 글은 티스토리에, 지식을 짜깁기해 재생산하는 글은 네프콘(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브런치에는 시와 에세이 위주의 글을 담도록 하자. 그 밖에 영화, 예술 그리고 반려견 이야기는 그저 좋아서 쓰는 글이니 유지하기로 한다. 길고 긴 글을 쓰면서 이제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브런치에 머무는 이유와 목적은 각자 다를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은?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이다. 실제로 브런치를 시작한 후 지난 한 달간 독서량이 줄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독보다는 정독을 선호하며 한 달에 최소 여섯 권, 평균적으로 8권~10권을 보고 있다.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고 당장 나의 독서량이 줄었다. 책 대신 브런치 삼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브런치 글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나는 아직 공부로 채울 것이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고전과 인문서적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책 보는 습관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 늘 동시에 열 권 정도를 보고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 기분에 따라 집중력에 따라 또 때로는 즉흥적인 필요에 따라 나는 책을 읽는다. 다만 동시에 진행되는 책들이 많다 보니 휴지기를 갖는 것이 좀 꺼려진다. 자칫 중도에 잊히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황당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런 이유로 가급적이면 책 읽기는 꾸준히 수시로 유지되어야 한다.


나 역시 봤던 책을 다시 보고 필사 또는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최근 몇 년 좋은 책을 많이 접해서 다시 볼 책목록이 제법 쌓였다. 그런데 이렇게 브런치에서 한가로이 즐기고 있다니. 문득 해치워야 할 책 제목들이 내 머릿속에 줄을 선다. 인풋에 구멍 나겠다. 서둘러 책을 읽어야겠다.


공부를 하자


한 가지 더, 책 읽기 외에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했다. 딸아이와의 대화 중 정신이 퍼뜩 들었던 내용이 있어서 옮겨본다. 우리 집 고2 아가씨는 음악 전공자다. 과거와 현재는 타악기 전공, 미래는 작곡가를 꿈꾼다. 전공자들은 늘 전공자만의 견고함과 오만함을 갖는데 나는 그 둘 다 사랑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견고함은 지식적인 단단함이다. 아이는 자신이 배운 데로 배움의 기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은 기본이라고 여기며 끊임없이 부족함을 채워나간다. 한편 오만함은 일종의 자기애적인 상태를 말하는데 병리적인 것이 아닌 표현의 욕구와 예술적 승화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이 둘 다를 사랑하는 건 견고함과 오만함은 서로 보완해 주며 예술가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 던진 말은 부끄럽게도 "엄마, 공부를 하세요."였다. 시를 공부하고 에세이의 기본기를 닦으라는 것이다. 아이의 말에 나는 아주 잠깐 몇 마디 괴변을 늘어놓기도 했으나 결국 아이의 말이 맞았다. 아이는 가차 없이 나의 게으름을 지적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한 게으름은 comfort zone, 안전한 곳에 머물고자 하는 낡은 사고방식을 말한다. 결론은 아웃풋보다 인풋, 인풋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성의 시간이 지나갔으니 이제 행동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 확립


지금 쓰는 이 글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다. 브런치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초심을 더듬어보고 내가 진정하고자 하는 게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을 수 없는 건 뭔지, 마지막으로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리가 되는 시간이었다. 참,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나는 때가 되면 플랫폼 하나를 더 늘려볼 계획이다. 내게 글쓰기의 종착지는 창작이다. 지금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지만 나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브런치는 소설을 쓰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아니다. 다시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려본다. 조물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는 조금 장수할 계획이고 10년을 계획한다면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이다. 이 글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스레 다듬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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