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 전 예매해 둔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왔다. 얼마 전 딸아이와 영화 <맘마미아! 2>를 보고 그 여운을 떨치지 못해 뮤지컬 관람을 결심한 것이다. 아침부터 기대감에 부푼 아이는 나에게 맘마미아 코디를 부탁했다. 멜빵바지가 있느냐 묻더니 없으면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했고 가급적이면 꽃무늬가 화려한 상의를 입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물론 딸아이 역시 맘마미아 의상을 입겠다고 했다. 대체 뭘 입으려는 걸까?
내 배로 난 자식이지만 아이는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딸아이는 ABBA 의상을 입고 ABBA 화장을 하고 등장했다. 노란색 앞머리는 양갈래로 흣뿌리고, 짙은 아이라이너는 별처럼 반짝이게, 하늘색 셰도우로 물들인 눈이 한눈에 봐도 무대 위의 ABBA였다. 허리엔 화려한 스카프로 벨트를 만들어 적적해 보이는 블랙진에 멋들어지게 걸치고 스니커즈는 좌우 언발란스하게 형광 분홍과 노랑으로 마무리했다. 평소 아이는 너드미를 풍기며 머리도 잘 안 빗는 타입이지만 일 년에 몇 번 이벤트성 코디를 선보이곤 한다.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적응이 되었기 때문에 기꺼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외출 전 아이가 나에게 타로점을 봐줬다. 자칭 MBTI 전문가였던 녀석은 최근 취미로 타로 관련 책을 보고 있었는데 제법 '꾼'처럼 보였다. 부정 탄다며 카드도 못 만지게 하던 녀석이 나에게 카드 3장을 뽑으라고 한다. 두 가지 충돌하는 카드가 나왔다고 말한다. 하나는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의 카드였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긴장감이 있을 것이라는 카드였다. 뭘까? 뭐든 기대되는 날의 시작이다.
지난달 영화 <맘마미아! 2>를 함께 보며 F인 나는 여러 번 훌쩍였고 T인 딸아이는 낭만주의 영화의 정수라며 곁에서 물개박수를 쳤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낭만'을 보았지만 함께 감동했다. 특히 ABBA를 모르는 아이에게 나는 ABBA가 얼마나 전설적인 그룹인지를 얘기해 줬고 -비록 나 어렸을 때도 ABBA 음악은 많이 안 들었지만- 딸아이와 나는 영화 음악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날 밤 우리는 이미 한 차례 감동의 여운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딸아이는 나에게 평소 철학, 심리학, 음악, 소설, 영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동무이기도 하다. 아이는 타악기와 작곡을 전공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는 두 차례나 완주한 덕후이며 최애의 책이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라고 하니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 덕에 내 세상은 더없이 풍요로워졌다. 특히 10편에 달하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두 번이나 정주행 한 것은 내 인생에서 몇 안 될 자랑거리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이 덕분이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관람하기 전 나는 <맘마미아!>의 원작을 더듬어봤다. 1999년 영국에서 초연한 <맘마미아: Mamma Mia!>는 베니 앤더슨과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작곡한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캐서린 존슨이 쓴 뮤지컬이다. 이후 뮤지컬 <맘마미아>는 2008년, 2018년에 영화로 재탄생했고 나는 그중 영화 <맘마미아! 2>와 뮤지컬을 관람했다.
영화와 뮤지컬은 각각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2008년 영화 <맘마미아!>1편과 뮤지컬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몰랐던 가장 큰 차이점은 <맘마미아! 2>에서는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엄마 도나는 오로지 소피(아만다 시프리드)의 회상 속에서 등장는데 뮤지컬을 보며 도나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또 다른 부분은 영화 -정확히 말해서 <맘마미아! 2>- 속에서는 '여행'이라는 소재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무대 특성상 뮤지컬로는 그려낼 수 없는 부분이겠다 싶었다. 그 밖에도 극 중 세 아빠 샘, 해리, 빌의 캐릭터의 비중과 묘사 역시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로 나는 영화를 더 재밌게 본 것도 같다. 뮤지컬을 먼저 봤다면 달랐을까?
뮤지컬만의 하이라이트를 찾는다면 단연 무대 엔딩의 커튼콜이리라. 영화에서 채울 수 없었던 부분, 바로 ABBA 무대의 화려한 재연이었다. 중국에서 본 공연이라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을까 했던 건 나의 노파심이었다. 관객석의 모두가 기립했고 그중 중장년층은 순간 소년 소녀로 돌변해 열광하며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내 앞 좌석의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남자분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와이프-였을 것이다-를 와락 껴안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 것 같다. 뮤지컬 <맘마미아!>나 나에게 다양한 감동을 주는구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맘마미아!>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맘마미아! 2>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 도나가 환영으로 나타나 딸 소피의 결혼식 때 부른 아바의 노래 My love, my life는 명곡이고 명장면이다. 참을 수 없는 감동에 몸서리쳤던 순간이었다. 영화 속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 엄마와 딸은 '삶'이라는 여정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사실. 현실의 엄마 도나는 그저 삶이 고단한 미혼모였을 수도 있다. 영화가 나에게 준 가장 큰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사랑과 낭만을 잊지 않고 살아간 그들의 철학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할 때 쯔음부터 우리는 각자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유독 타악기 연주가 돋보였던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휴대폰을 이용해 영화에서 듣지 못했던 ABBA의 노래들을 검색해 봤다. 밤은 깊어갔지만 <맘마미아!>의 여운은 쉽사리 가실 것 같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