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어진 우리들

by 바람결

최근 늦은 밤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근처 놀이터의 그네가 자물쇠로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 꽤나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늦은 시간 누군가 그네에 앉아 시끄럽게 하기라도 했던 걸까. 물론 이해는 된다. 늦은 시간 소음이 생긴다면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칠 것이다. 그런데 너무 과한 조치는 아니었을까. 소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늦은 밤에는 아무도 그네를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였을까.


요즘 우리 주변의 다른 공간들도 마찬가지로 '그네를 묶고' 있는 것 같다. 노키즈존, 카공족 금지카페처럼 대놓고 명시된 공간부터, 아파트 단지는 높은 담벽을 세우고 단지를 지나가는 길목에도 도어락을 설치한다. 심지어는 다같이 공유하는 공간인 공원 등의 장소에서도 늘 수많은 민원과 짜증섞인 말들이 들려온다. '여기서 저런걸 왜하는 거야', '이 정돈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언젠가부터 우리는 타인을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어쩌면 모든게 돈으로 치환되면서, 특정 활동만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르려면 노래방을 가면 되고, 운동을 하려면 헬스장을 가면 되며, 담소를 나누기 위한 공간으로는 카페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공간은 행위의 포괄성을 상실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공허함을 느꼈다. 우리는 왜 외로운걸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을 만날 곳이 없다.'

이미 우리는 변화한 일상을 체감하고 있다. 일상의 공간들이 특정 행위만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기에, 그 행위를 제외한 다른 행동들은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자본주의는 가르침과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마저 돈으로 치환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일상의 공간에서 타인과 대화조차 쉽게 하지 못하며, 의미있는 사회적 행위는 점점 사라져간다. 그렇기에 사람을 만날 곳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망은 너무 좁아졌고, 너무 외로워졌다.


'모두가 외롭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리 절망적인 표현이 아니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은 혼자보다 타인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현대사회에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심화되어도 우리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 인간의 본성 자체의 관성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작은 용기뿐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공간을 타인과 함께할 용기. 주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한 번 웃어주고, 밝게 인사해주는. 정말 작디작은 용기들만으로도 '묶인 그네'를 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