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정말 생생하게 꾸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꿈에서 느낀 감정이나 경험이 깬 이후에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꿈에 등장하면 그 감정이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최근에는 가족에 대해서 인상적인 꿈을 꾼 적이 있다. 놀랍게도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심지어 분노의 강도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정도의 세기였다. 드디어 꿈이 궁금해졌다.
꿈이란 무엇일까.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이란 '억압된 소망의 변장된 성취'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가족에게는 화를 잘 참는 편이다. 또 대부분의 분노는 정말 사소하고 그마저도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덮이기에, 어쩌면 평소 느껴왔던 사소한 분노들이 쌓이고 쌓여 무의식에서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내가 꿈에서 느낀 다른 것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다. 바로 사랑이다.
프로이트의 해석의 핵심은 '억압'이다. 무언가가 꿈에서 표출되려면 그것의 억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랑'은, 시작부터 이 논리대로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이 억압될 수가 있을까? 잘 알다시피, 사랑은 분노, 기쁨과 같은 단편적인 감정과는 다르다. 오히려 사랑이 분노, 기쁨을 유발하며, 일시적이기보다는 일상적이고 내재화된 감정이자 상태이다. 그렇기에 분노처럼 표현의 억압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서 사랑의 특이한 성질이 나타난다.
사랑의 표출은, 곧 사랑의 억압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의 표출은 매우 다양한 형태와 감정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특정한 형태의 표출은 곧 다른 형태의 억압을 의미한다. 나는 가족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내가 느낀 분노를 숨길 수도 있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행위 모두 사랑의 표출이다. 그러나 한 가지 형태로 사랑이 표출되면 다른 형태로는 사랑이 표출될 수 없다. 서로 상반되는 표출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랑의 표출은 곧, 사랑의 억압이 된다.
결국 사랑은 해소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표현하면 할수록 그 조각들이 눈처럼 아스라이 내려 우리의 마음을 뒤덮어버린다. 어쩌면 가슴 벅차도록 차오르는 것이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이면 만들어보는 눈덩이처럼, 사랑의 조각들을 소중히 꼬옥 뭉치고 뭉쳐 가득 채워뒀기에, 떠올릴 때마다 그토록 아리고 시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