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머무는 곳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꼭 그런 공간이 있다.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남아있는 곳. 지금 당장이라도 근처 놀이터로 뛰어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곳. 상기된 볼과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새빨간 노을이 여전히 선명하게 물들어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내겐 동네 상가가 그렇다. 수많은 가게가 사라지고 옛 친구들도 이젠 곁에 없지만, 나지막한 천장, 세월의 흠집이 가득한 바닥, 익숙한 구조는 어째선지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추억의 공간들은, 지금 내가 걷는 현실 위에 과거가 아롱지게 한다.
우린 참 과거에 약한 존재들이다. 분명 당시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고, 어떤 시기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날들뿐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반추해 보면 '그런 날도 있었지, 그래도 이런 건 참 좋았는데' 하며 기어이 미화하고 만다. 참 고맙게도, 지나간 시간은 이토록 다정하게 남는다.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조금 버틸만하다. 사무치게 힘든 날도, 지독하게 지루한 날도 결국엔 모조리 미화되어 근사한 추억으로 남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먼 훗날의 나는 오늘의 이 고단함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금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활력의 조각들을, 나는 또 어떤 마음으로 고이 모아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여줄까.
당신의 시간은 나중에 어떤 색으로 채색될까. 우리가 함께, 혹은 각자 보내는 이 순간들이 훗날 돌아봤을 때 '참 찬란했노라' 말할 수 있는 풍경이길 바란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아름다움을 미리 빌려와 오늘을 웃어보자. 우리의 추억이 될 오늘, 꽤나 설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