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딜레마. 너무나 유명해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질문이다. A 선로에는 한 명이, B 선로에는 5명이 있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대다수는 공리주의를 말하며 A를 선택하곤 한다. 한 명의 희생도 안타깝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게 합리적이지 않냐면서.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딜레마는 방향성부터 잘못되었다.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니. 인간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기차를 멈출 방법을 먼저 떠올리지 않겠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하면 사람들은 으레 전제를 덧붙인다. "안돼, 기차는 절대 멈출 수 없어. 넌 둘 중 하나를, 차악을 골라야만 해."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똑같은 비극이 닥쳤을 때, 망설임 없이 선로를 선택하길 바라는 건가? 다른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선택하기 쉬운 차악을 고르라는 말인가?
인간은 늘 차악이 아닌 최선을 향해 나아갔다. 기차를 멈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만들었고, 수동제동장치를 만들었으며, 그걸로 모자라 기계가 고장 나면 자동으로 멈추는 시스템까지 고안해 냈다. 그 치열한 고민의 역사 속에 과연 차악이 설 자리가 있었을까? 그 누가 편하게 선로나 고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냐? 최악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차악은 결코 최선이 될 수 없다. 무언가를 포기하며 고른 선택이, 진정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가? 그럼 다음엔 또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현실이란 벽에 가로막혀, 이번에도 희망을, 꿈을 내어줄 텐가.
현실과 타협하지 마라. 끝내 가로막혀 좌절할지라도, 벽돌에 손톱을 박아 넣고 악을 쓰며 기어올라라. 두려움에 떨고, 고통받고, 머리를 쥐어뜯어라.
그리하여 기어코 종막에 이르러, 최선을 쟁취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