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철수와 병국이를 만나는 날

독서수업 들여다보기 1 _ 《철수는 철수다》

by 바람
진행해오던 독서수업 형태를 현장의 목소리 그대로 담아 보려고 한다. 몇 년 동안 수정되고 추가되고 확장된 수업 형태이다. 과거 녹음해 둔 수업 장면도 틈틈이 풀어가려고 한다. 아이들과 교사의 성장이 담긴 기록이다.



첫 회는 며칠 전 진행된 수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연기와 온라인 개학으로 미뤄진 독서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교실로 찾아가는 독서 프로그램이다. 교과에 상관없이 2교시 또는 3교시 블록수업으로 진행한다. 이 학교는 3단계 과정 중 기초 단계인 <책 읽기의 매력> 과정을 신청했다. <책 읽기의 매력> 과정은 쉽고 분량이 적은 도서를 이용해 읽기의 흥미를 이끌어 내고 읽기의 시작을 안내해 준다.


<책 읽기의 매력>, 첫 책은 노경실 작가의 《철수는 철수다》이다.

8955472285_f.jpg 책의 앞표지

1교시, [책 탐험]


= 책을 이미 받았네요. 혹시 다 읽고 온 친구 있어요? (2~3명이 손을 든다.) 책 읽는 거 좋아해요?

- 아니요.

= 그런데도 이미 다 읽었어요?

- 그냥 할 게 없어서 펼쳤는데 재미있어서 다 읽게 됐어요.

= 우아, 다행이네, 책이 재미있었다니. 다른 친구들도 궁금하겠는걸.

오늘은 책을 어떻게 더 재미있게 읽는지, 책을 읽은 후에 무엇을 하면 더 좋을지, 감상은 어떻게 전하는 건지에 대해 직접 경험해 볼 거예요. 3교시 동안 진행될 텐데, 먼저 책 탐험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책 탐험 활동지’ 배부


= 먼저 이 책의 첫인상이 어때요? (아직은 서먹해서 말문이 트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른 책들과 크기가 다른데?' 이것도 인상이 될 수 있겠죠.


제목이 신기해요, 글씨체가 웃겨요, 얇아요! 등의 말들이 약간씩 들린다.


= 그렇구나, 반듯한 글씨체가 아니네. 그럼 책 탐험의 1단계를 해봅시다. 앞표지와 뒤표지를 보고 궁금한 점을 찾아 질문으로 만들어 볼까요?


“궁금한 게 없으면요?”

이런 친구가 꼭 있다.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물으면서 가능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말도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친구들보다 낫다.


= 그렇지, 궁금한 게 없을 수도 있지요. 그럼 ‘나는 왜 이것을 보고도 궁금한 게 없을까? 나는 천재일까?’ 이게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걸? 그렇게 질문을 적어보도록 하자.


진짜 그렇게 적나 보다. 대개는 '없음'이라고 적는다.


친구들 표정에서 어려움을 발견하면 약간의 단서를 주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표지의 신발이 누구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하더라.”


8955472285_b.jpg 책의 뒤표지


앞과 뒤를 열심히 살피며 활동지에 질문을 만들어 적는다.


= 1분 30초 뒤에 발표할 겁니다. (아이들의 진도를 확인한 후에 발표 시간을 갖는다.)

자, 어떤 점이 궁금했는지 자기가 만든 질문을 발표해 볼까요? (손을 드는 친구들이 꽤 있다.)


- 철수의 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 박철수와 강철수인지, 아니면 이철수만 나오는 것인지도 궁금해지네요. 책을 읽으면서 확인해볼 수 있겠네요.

- 표지에 연하게 쓴 글씨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고요, 왜 제목을 'ㄱ'자 형태로 꺾어 썼는지 궁금해요.

= 친구는 디자인에 관심이 있구나


-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합니다.


- 운동화 끈이 왜 풀려있을까요?

= 아,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참 눈썰미가 좋네. 급하게 나가느라 그런 건지, 늘 풀어놓고 다니는 녀석인지 나도 궁금하네.


- 책값이 9,00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왜 9,000원씩이나 하는지 궁금해요.

= 하하, 9,000원 인 것이 마음에 안 드나 보구나. 그대의 이름은?

- 강정수입니다.

= 얼마면 적당할 것 같아?

- 이렇게 얇은데 9,000원은 좀 비싸고요, 7,000원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한 점이 다 다르면서 많네요. 책 탐험 2단계 시작해봅시다. '책날개 들여다보기'인데 책날개가 어디인지 알아요? (‘몰라요’ 하는 녀석도, 책날개를 가리키면서 안다고 반응하는 친구들도 있다.)

= (책날개를 펼치면서) 이 부분을 책날개라고 해요. 책날개에 중요한 정보가 있어요.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글을 읽고 역시 궁금한 점을 질문으로 만들어 봅시다.


8955472285_wf.jpg 책날개


= 발표해 볼까요?


- 이 작가는 즐거워도 걷고, 슬퍼도 걸으며, 화가 나도 걷고, 졸려도 걷는,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혹시 글을 쓰다가 힘들면 포기하는지 궁금해요.

= 와! 앞부분 들을 때까지는 ‘이 작가는 왜 걸을까요?’라고 질문할 것 같았는데, 역시 여러분이 훨씬 생각이 깊네요. 슬퍼도 화가 나도 걷는다고 하니, 책을 쓰면서 힘들어져도 걸으면서 다시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구나. 정말 놀랍습니다.


- 노경실 작가는 청소년에 관한 책을 많이 썼다고 했는데 왜 하필 청소년 이야기를 쓰는지 궁금해요.

= 왜 그런지 우리가 한번 상상해 볼까요?


'어릴 때 경험한 것이 많아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등의 여러 대답이 나온다.


= 책을 읽으면 서 이 궁금함을 해결해도 좋고, 자신의 추측과 작가의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이제 3단계입니다. 3단계는 처음부터 50~60쪽 정도까지 읽어 보는 것인데, 이 책은 얇으니까 생략하고 4단계로 바로 갈게요. 4단계는 주~욱 읽기이지요? 자, 읽기 시작.


조용히 책을 읽는다. 드물기는 하지만 책을 읽지 못하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어서 교실 전체를 천천히 걸으며 읽는 것을 도와준다. 옆으로 다가가 펼쳐진 책장에 함께 눈을 주거나, 등장인물에 관해 질문하며 집중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활동지에 무언가를 적는 녀석이 있어서 다가가서 보니 1,2 단계에 만든 질문의 답을 적어 놓았다.

'철수의 성은 ‘김’이다.'

다른 녀석의 활동지에도 답이 적혀있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다.’


10분 정도 지나서 끝종이 울린다.

“쉬는 시간에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와요. 2교시에 계속 책을 읽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녀석들도 있지만, 내처 책을 읽는 녀석들이 꽤 있다.



책탐험활동.png <책 탐험> 활동지


2교시, [소감 작성하고 소감 나누기]


수업이 시작되면 읽던 책을 마저 읽도록 한다. 이야기에 빠져든 학생들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책 속으로 쏙 들어가 있다. 아이들마다 읽는 속도가 다르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서 다 읽은 아이에게는 활동지의 ‘책 읽은 소감 적기’ 칸 채우는 것을 안내한다. 줄거리는 되도록 빼고 감상과 생각 위주로 칸을 가득 채우게 한다. 인상적인 문장도 적고. 감상 적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와는 소곤소곤 대화를 하기도 한다. ‘등장인물 중에 누가 너랑 가장 비슷해?’, ‘너는 철수와 준태 중에 누구야?’, ‘제일 화를 돋우는 사람은 누구야?’ 등의 대화를 나누고, 다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물으면서 그 내용을 문장으로 쓰는 것을 돕는다. 아이들이 활동지에 감상을 남기는 것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조금씩 반응을 한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꼼지락 거리는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응원하기도 한다.


'재미있었다' 등의 한 줄 분량을 "~해서 불쌍하고 ~ 하면 좋겠다' 등을 이용해 늘려 놓기도 한다. ‘철수가 불쌍하다’라고 적은 아이에게 왜 불쌍한지 물으면 공부도 못하는데 엄마가 다른 아이랑 비교해서 불쌍하다고 한다. ‘네가 철수라면 어떨 것 같아?’ 했더니,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 왜 아무렇지 않은 거야?

- 우리 엄마는 철수 엄마랑 달라요.

= 뭐가?

- 우리 엄마는 저 포기했대요. 그래서 잔소리도 안 해요. 그래서 저는 철수처럼 불쌍하지 않아요.

=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 공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죄송하다고요. (뜻밖의 반응이다.)

= 엄마가 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이 대화를 간추려 감상으로 적어보자고 했다. 한 줄 분량이 칸을 가득 메울 수 있게 늘어난다.


2교시 끝난 쉬는 시간에 여러 명의 친구들이 다가와서 자신이 기록한 '책 탐험 활동지'를 보여주고 3교시에 자신도 발표하겠다고 한다. 6번으로 예약 했다.


3교시, [감상 나누기, 주제 토론 이어가기]


마저 책을 다 읽고, 감상을 채우고 있는 몇 아이들을 포함해 대부분 아이들이 감상 기록까지 마쳤다.


“3교시에는 책 읽은 소감을 나누겠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들어볼 거예요. 활동지 <북적북적>에 친구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요약해서 적어요. 발표하는 친구는 이름을 먼저 말하고, 줄거리는 되도록 빼고, 기록한 종이를 보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말하면 돼요.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도와줄 거니까, 마음 놓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돼요. 누가 먼저 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첫 시간에는 손을 드는 녀석이 없어서 차례대로 돌아가거나 무작위로 이름 불러서 발표하게 한다. 두 세번 정도 독서수업을 하고 나면 시간 내에 발표를 못할까 봐 앞 다퉈 손을 든다. 오늘도 역시 서로 눈치 보는 것으로 시작이다.


= 저 뒤에 앉은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다 영호였지, 방금 손을 들었는데(딴짓하느라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역시 가장 용기 있구나.


- 어... 어 손 든 거 아닌데...

= 쑥스러워하기는... 시작해 봅시다, 용기 있게 이름부터 말하고.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시~작.

-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 이름은 이영호입니다. 이 책을 읽고, 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잔소리하고 공부하라는 말만 하면서 준태와 비교하는데, 저 같으면 속상하더라도 참고 엄마 말을 따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철수는 엄마를 이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용기를 보여줬잖아요. 그래서 참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공부 잘하는 준태 삶이 부럽기도 했어요.


=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철수가 대단하다 생각했구나. 영호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친구구나.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싶고?

- 부모님 말씀을 항상 잘 듣는 건 아니지만 공부는 잘하고 싶어요.

= 첫 발표가 어려운 건데 용기 내서 발표하는 것을 보니 철수만큼 대단하네요. 다른 친구들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다른 친구도 발표해볼까?


- 저요!

= 아, 고맙습니다. 이름을 말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소감을 발표해 볼까?

- 저는 오명철입니다. 저는 준태가 얄밉습니다. 공부를 잘해가지고는. 제일 재수 없어요.


- 저는 양훈정입니다. 책을 읽는 중간까지는 인생은 성적순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끝까지 다 읽고는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불행하게 공부만 하는 것 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 철수가 준태보다 공부는 못해서 준태를 이겨보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철수가 잘하는 것을 찾아서 내 기분이 좋아졌어요. 철수 마음이 좋아 보여서요.

= 철수가 속상해할 때 너랑 같은 마음일 것 같아서 마음을 졸였구나. 철수가 잘하는 것을 찾으니까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네.) 와~, 공감을 했다는 거네. 대단하다.


- 저는 고영희입니다. 저는 철수 엄마가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철수에게 공부하라고만 하고 준태와 비교하고 지시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칭찬을 한 번도 안 해요.

= 철수 엄마에게 무슨 부탁을 하면 좋을까?

- 지시 말고 칭찬을 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칭찬하면 철수도 더 열심히 했을 거예요.

= 야단치고 비교하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이 오히려 좋다는 거구나. 이 말을 철수 엄마도 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철수 엄마는 왜 칭찬은 안 하고 계속 비교하는 말만 했을까도 궁금해지네.


- 저는 박유영입니다. 저는 철수 친구인 병국이가 불쌍했고 철수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병국이 엄마가 암에 걸려서 병국이도 속상한데 철수는 자기가 속상한 것만 크게 생각해서 병국이 에게 아무것도 안 물어보잖아요. 병국이가 굉장히 속상했을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잖아요. 병국이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서 불쌍했어요.

= 그렇구나. 맞네. 병국이 마음이 지금 엄청나게 아플 텐데, 철수가 힘들어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구나. 유영이 마음이 참 세심하다. 병국이는 주인공이 아닌데 유영이 마음이 쓰인 것을 보니. 유영이가 병국이 옆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니?

- 철수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하고 싶고요,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제 이름은 한대훈입니다. 저는 철수가 엄마한테 미안했을 것 같아요. 철수 엄마도 막 아들 자랑을 하고 싶을 텐데 자랑할 게 없잖아요. 그래서 미안하니까 엄마 잔소리도 참고 들었을 것 같아요.

= 대훈이는 준태와 철수 중에 누구랑 비슷해?

- 철수요!

= 그럼 대훈이도 엄마한테 미안해요?

- 네, 그래서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 이 교실에 준태가 있어요?

- 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시선을 준다.)


- 선생님, 이 책이 왜 9,000원인 줄 알았어요!

= 어, 비밀을 찾았어요?

- 아직 끝까지 다 읽지 않았는데요,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서 9,000원으로 정했나 봐요.

= 끝까지 다 읽으면 책 값을 얼마로 정할 거야?

- 10,000원 정도 해도 될 것 같아요. 작가가 바보 같아요. 이렇게 재미있는데 9000원은 싸요.

= 책값을 올릴 정도로 재미있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 철수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맨날 비교당하고 혼나고, 시험 못 볼까 봐 걱정하고...

= 정수도 그래요?

- 아니요, 우리 엄마 아빠는 공부는 잘 못해도 된다고 해서요. 철수처럼 속상하지 않은데, 이 책 보니까 철수 같은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요.

= 우아, 정수는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다.


- 제 이름은 장영수입니다. 저는 철수가 이해되기는 했지만 철수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나쁜 거야?) 비교당하는 것은 속상하겠지만, 부모님께 대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영수가 철수라면 대들지 않고 어떻게 할 거야?

- 기분이 나쁘니까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차분하게 말할 겁니다.

= 우아, 그러면 부모님도 차분하게 생각하고 조심 하시겠구나. 그런 방법이 있는데 철수가 그걸 몰랐나 보다.


- 제가 철수라면 준태가 밉고 화가 날 것 같고, 준태 엄마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조용히 있는 친구를 가리키고 발표하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못한다고 머리만 흔든다.

= 이름부터 말해볼까? 소감을 잘 쓰는 것 같던데.

-... 정소윤요...

= 책 재미있었어요? (끄덕끄덕)

= 누가 제일 못마땅했어요?

- (머뭇거림도 없이) 아빠라는 사람이요.

= 왜에?

- 아빠라는 사람이 철수와 엄마가 싸우는 것을 보고만 있잖아요. 말려야죠.

= 아빠가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구나. 아빠가 철수와 엄마 중에 누구 편을 들어주면 좋을까?

- 누구를 편드는 게 아니고요, 싸움을 말려야죠. 아빠라는 사람이.

= 선생님이 잘못 생각했구나. 싸움이 나면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말려야 하는데 말이야.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배웁니다. 소윤이는 평화주의자구나.


소윤이는 다시 입을 닫는다. 조용히.


소감 작성하는 것을 볼 때 인상적인 내용을 적은 친구가 있었는데 전혀 발표할 태세가 아니다.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자.


= 이 줄에 아직 발표 안 한 친구가 한 명 있네. 소윤이 뒤에 앉은 친구가 발표하면 어떨까?

- 제 이름은 현지아입니다. 저는 이 책이 자존감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수가 준태를 따라 하지 않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 자존감을 높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준태가 속상할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움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지아는 준태와 철수 중에 어느 쪽에 가깝니?

- 저는 철수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준태로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대부분 끄덕끄덕)

= 지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하지 않는 준태가 미움받는 게 속상했구나. 여러분에게 질문할 것이 있어요. 준태는 왜 미움을 받는 걸까요?


- 공부를 잘해서요.

= 공부를 잘하는 것이 미움받을 일인가요? 준태의 잘못인가?

- 철수 엄마처럼 어른들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엄마들이 준태를 부러워해서 자기 아이들과 비교하니까 준태가 미움을 받아요.

= 준태와 비교하는 철수 엄마와 다른 어른들이 잘못하는 걸까요?

- 청소년을 판단하는 기준이 공부 하나라서 그래요!

= 와! 그럴 수 있겠다. 기준이 다양하면 모두 잘하는 것이 있을 텐데요.


-제가 발표해도 될까요?

= 그럼요!

- 제 이름은 홍유준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우울증을 겪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비교당하고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러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면 좋겠어요.

= 와! 여러분은 정말 어른들보다 생각이 깊고 배려하는 마음이 크네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이 소감들은 부모님이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구들이 발표한 소감을 듣고 ‘이 친구의 말은 정말 인상적이다.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을 보는구나.’ 하는 내용이 있으면 알려줄래요?


<북적북적> 활동지를 훑어보고 여러 명이 손을 든다.


- 저는 유영이 말을 듣고 병국이 마음을 못 봤구나 하고 반성했어요. 병국이 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유영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 저는 아빠가 잘못했다고 말해 준 소윤이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철수와 철수 엄마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아빠도 아빠의 역할이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소윤이가 대단해요.

- 저도 병국이를 보게 해 준 유영이가 대단했어요. 그 전에는 주인공에게만 관심이 갔는데 주변 인물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저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양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 유영아, 유영이는 친구들이 유영이 말을 듣고 병국이 마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했는데 지금 기분이 어때요?

-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제 말을 중요하게 생각해주니까 기분이 좋아요.


= 소윤이는 어때요?


수줍게 얼굴만 붉히고 말을 하지 않는다.


= 그럼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우리가 기준을 다양하게 만들어볼까요?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 저는 노는 것을 잘합니다.

= 옳지! 노는 것을 잘하니까 뭐가 없을까요?

- 스트레스가 없지요. 병원 갈 일이 없어요!!

- 저는 영어를 좀 잘합니다.


유영이가 자기는 잘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 유영이는 잘하는 것이 있던데? 우리 모두 아까 확인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세심함이 유영이 장점이던데?
아이들이 맞다고 말해준다.


- 저도 잘하는 것이 없어요.


윤수의 말에 친구들이 아니라고 한다. 윤수는 잘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악기도 잘 다루고 운동도 잘한다고 글도 잘 쓴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 친구들은 잘하는 게 많다고 말하는데 윤수는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있나 보구나. 뭘 더 잘하고 싶어?

- 야구요!


= 지아는 뭘 잘해?


아이들이 ‘공부요!’라고 말하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 저는 글짓기도 부족하고, 공부도 더 해야 하고...

= 지아는 그럼 뭘 잘하고 싶어요?

- 모두 다, 더 잘하고 싶어요.


북적북적활동.png <북적북적> 활동지


=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오늘 수업에 대해 마무리 소감을 말해 볼 친구, 2명만 신청받겠습니다.


- 책을 읽고 다른 친구들 생각을 들어보니 다 달라서 놀랐어요. 그리고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질문을 만들고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좀 더 꼼꼼하게 읽게 됐어요. 앞으로 국어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평소에 주인공만 눈에 들어왔는데, 친구들 덕분에 주인공 말고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 한 명 더 말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의 장점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 멋있고 대단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책을 읽고 또 이야기를 나눠 봐요.



아이들은 책 속의 인물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감정을 새롭게 알게 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다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는 등장인물에 공감하며 안전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것이니까.


독서를 통해 감정의 정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소감 나누기 활동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교사의 발언으로 다소 위안을 얻기도 한다. 같은 책이더라도 구성원이 다르면 수업은 아주 다르게 진행된다. 각자 경험한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함께 책 읽기의 또 다른 장점은 앞서 수업 장면에서 확인했듯이 각자의 시선에 걸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미처 파악하지 못한 지점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이해한다는 점이다. 한 권의 책을 열 명이 함께 읽으면 열 권의 책을 읽는 셈이다. 이런 경험이 많아질수록 공감 능력이 좋아지고 지식의 이해도가 넓고 깊어진다.


3시간의 연속 수업을 지켜본 담당 교사는 평소에 보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 놀랐다고 한다. 담임교사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며 친구들의 ‘책 탐험 활동지’와 ‘북적북적 기록지’를 담임교사에게 보여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말이다. 다음 주에 읽을 책에선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마음을 나누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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