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어려운 이유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다고요?

by 바람

1. 잔망스러운 아이


'옆집 순이는 어린 계집애가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라는 문장이 교과서에 있었다. 그 옆, 새로 나온 어휘 풀이 공간에 작은 글씨로 단어의 뜻이 적혀 있다.

* 잔망스럽다 :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 보기에 태도나 행동이 자질구레하고 가벼운 데가 있다.

(요즘 교과서는 옛날 전과 또는 참고서와 비슷하다. 이것저것 설명과 자료 첨부, 활동지까지 꼼꼼하게 챙겨 넣어 크고 무겁다. 녀석들은 교과서를 안 들고 다닌다. 크고 무겁기 때문에 교실 사물함에 넣어 두고 가방에는 학원 교재를 넣고 다닌다.)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마디 보탰다.

“순이는 얌전히 가만있는 녀석은 아니구먼. 까불까불 하겠는데?”


영이가 반론을 제기한다.

“아닌데요. 선생님이 틀렸어요. 순이는 얌전할 것 같아요.”


어?

어디서 엉킨 걸까?

왜 얌전할 것 같은지 물었다.

“순이는 '잔망스럽지 않다'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태도나 행동이 가볍지 않은 거지요.”


녀석은 ‘여간~~ 않다’의 호응 관계를 모르고 있던 것이다. 참고서 같은 교과서에도, 학원 교재에도 그 설명은 없으니까. 영이가 공부를 못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점, 그 대화를 듣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이 영이와 같다는 점, 그리고 영이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많은 아이들이 ‘순이는 태도나 행동이 가볍지 않은’ 아이로 알고 넘어갔을 것이란 점에서 아득했다. 많은 아이들이 질문하지 않고 수업을 그저 듣는다. 자기들이 이해한 것을 정답으로 알면서 시험 준비를 한다.



2. 교과서는 읽기 싫어요


시험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먼저 꺼내 드는 것은 문제집, 학원 교재, 담당 교과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요약집 등이다. 교과서로 공부하는 아이는 보기 어렵다. 담임을 할 때 아이들 시험공부를 봐주면서 알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문제집을 풀고 채점하면 끝이다. 학원 교재를 보면서 까맣게 밑줄을 긋는다. 요약본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외운다. 옆 친구에게 요약집을 보며 문제를 내달라고 한다. 공부 방식이 각자 다르더라도 공통점이 있다. 교과서는 안 본다.

열심히 공부한 것 같은데 점수가 낮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머리를 탓한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포기하거나, 잠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 때로는 학원을 바꾸기도 하고 학원 수강 신청을 추가하기도 한다.


시험이 공고되고 본격적으로 우리 반의 시험공부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교과서부터 보게 한다. 몇 번 저항하다 낭패를 본 녀석들의 합류가 이어지면서 교과서 보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사실은 교과서를 읽는 것은 어렵고 공부하는 티도 나지 않는다. 시험 범위의 내용 전부를 읽는 것이 어려워 요약집을 외우고 문제만 풀었던 것이다.

교과서를 읽으면서 모르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부터 해결하게 했다.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면서 가급적 외면하려는 과목이 역사와 과학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다른 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자어가 가득하고 낯선 ‘전문 용어’가 많아서 읽기 힘들다. 한글인데 ‘외계어’로 읽힌다.

‘이게 뭐예요?’라는 질문은 유치원 이후 사라졌다. ‘그것도 모르냐’, ‘네가 찾아 봐’, ‘아이는 몰라도 돼’ 등의 대답으로 물어보는 재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은 골치 아프기도 하니 그냥 넘어간다.


과학교과서.jpg 중2 과학 교과서, 형광펜은 과학 시간에 그어 놓은 밑줄. 연필로 밑줄 그어 놓은 단어가 모르는 단어다.


교과서사진.png 중2 역사 교과서, 다른 아이의 책이다. 모르는 낱말이 꽤 많다.


역사 과목의 소단원 <중국과의 교류> 부분이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은 수업 중에 담당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나 보다. 시험 범위를 펼치고 모르는 단어에 표시를 하게 했다. 연필로 밑줄 그은 단어들이 이 친구가 모르는 말이다. 아마 더 있을 수도 있다. 앞의 예시처럼 잘못 알고 있으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오해하는 단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친구가 모른다고 밑줄 친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선진 문물, 기여, 전진, 북위, 왕조, 친선 관계, 율령, 남조, 고원, 유연, 초원길, 북방 민족, 육로, 교섭, 해로, 개척, 긴밀, 유역, 황해, 문물, 독자적, 파견


9~10개의 짧은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이 정도로 많다. '전진, 북위, 남조' 등의 고유명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문물, 친선 관계, 육로, 해로' 등을 모르는데 <중국과의 교류>가 이해될 리 없다. 이미 수업 시간에 배우고 시험 범위로 정해진 내용인데도 이 친구는 들었음직한 이 단어들을 모른다고 한다. 과목 선생님의 설명이 '외계어'로 들렸을 것이다. 달달 외우더라도 이해하고 외우는 것과 무조건 외우는 것은 많이 다르다. 결국 역사 학원에 등록하고, 그 교실에서도 ‘외계어’를 듣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책을 읽어 온 아이들은 새롭게 배우는 <중국과의 교류>가 어렵지 않다. 낯선 고유명사만 담당 교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이해하면 크게 어려운 부분이 없다. 이 녀석들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중국과의 교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다른 공부를 하거나 논다. 아이들이 질투의 감정을 담아 던지는 ‘쟤는 공부도 안 하고 노는 것 같은데 점수가 잘 나와요.’라는 문장의 주인공이 이들이다.



3. 이게 말이 돼요?


초등학교 6학년 교실. 독서 특강이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책 읽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책 읽기에 집중한 아이들 사이로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눈과 귀를 그곳으로 보냈다. 한 친구가 옆 친구에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읽고 있던 책을 보여준다. 두 녀석 모두 이해가 안 된다고 소곤소곤.

뭐가 이해가 안 되는 건지 궁금해졌고, 그 녀석들의 궁금증도 풀어주고 싶었다.

“왜? 뭐가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거야?”라고 아주 친절하게 물었다.

문제의 책장을 펼쳐 보여준다.


그림52.jpg


‘별로 이상한 게 없는데?’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어디가 이해 안 되는지 다시 물었다.

“선생님! 여기 말이에요! 어떻게 그 자리에서 죽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죽었는데 어떻게 멋지다고 할 수 있어요? 우아 진짜 인간성이!!!”


‘가볍게 공을 낚아채서 그 공으로 현지를 공격했다. 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 문장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얼굴에 드러난 표정으로 알겠다. ‘이해가 안 돼!’를 연발한다.


“음.. 너희들 피구 안 하니?”

“하죠!”

“선을 밟아도 죽잖아.”

어리둥절한 아이들 얼굴.

“피구 할 때 공을 맞으면 어떻게 돼?”

“당연히 아웃이죠!”



4. 아는 만큼 보이고 집중한다


어린 날, 우연히 낡은 문고판 한 권을 보게 되었다. 박종화의 《목메는 여인》이다. ‘국민학생’에게는 낯이 선 작가고 은근한 제목이었지만, 어느 책이라도 읽어야 하는 욕구가 강할 때라 반갑게 읽었다.

거사가 들통나면 어쩌나, 어린 단종이 죽으면 어쩌나, 저렇게 모진 고문을 어찌 이겨내나 등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을 만나고, 김시습을 알았고 어린 마음에 신숙주가 미웠다. 그 책을 통해 단종 폐위와 세종, 세조를 만났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만났다. 중학교 국사(그 당시엔 ‘국사’라고 했다.) 수업이 그래서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며 그것에 해설과 의의를 더해 주셔서 수업에 저절로 집중했다. 적어도 생육신과 사육신의 이름과 언행이 '외계어'가 아니었다. 국어 시간에도 박종화의 《목메는 여인》을 만났다. 내용은 없이 작가 이름과 책 제목만 근대 역사 소설의 한 예로 소개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시험을 위해 그것을 외워야 했지만, 나는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때의 인상이 정정되고 오류가 바로 잡혔지만 박종화를, 《목메는 여인》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책을 읽지 않아 어휘가 부족하고 문장 이해력이 낮고 단계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학습 용어가 '외계어'로 들리면서 수업은 지루해진다. 소극적인 녀석은 수업 중 ‘딴짓’으로, 적극적인 녀석은 ‘수업 방해’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공부를 포기한다. 어릴 때부터의 책 읽기는 이후 아이들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학습에서 뒤처지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기 쉽다. 국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의 지식과 정보가 글로 표현되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수학과 과학조차 문장형으로 문제가 제시되어 읽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은 문제 자체를 읽지 않고 답을 고르기도 한다. 학습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어휘력과 배경 지식이 풍부할수록 학습한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가능성이 높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더 깊게 이해하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효과까지 있다. 많은 학자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는 만큼 보이고, 더 집중하게 되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며 알게 된 것으로 세상을 넓혀 간다.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이런 경험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괴로운 학습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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