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나오지 않았던 이혼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나는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사주를 보러 갔다.
지금 생각하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 같다.
오래된 목조 건물 안에는 향 냄새가 가득했다.
점쟁이는 내 사주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본인 사주에는 이혼수는 없어요. 결혼하면 쭉 이어질 팔자네요."
그 말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그 무렵 남자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딴짓을 하다 여러번 걸려서 신뢰는 바닥을 친 상태였고 헤어질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나에게 니가 전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나밖에 없다며 결혼하면 달라질거라며 사탕발림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점쟁이의 '이혼수가 없다'는 그 한마디에 흔들릴 일이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함께할 운명일 거라고 믿었다.
그게 어떤 운명인지도 모르고.
결혼 생활은 사주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로 가득했다.
자기 생활을 버릴 수 없다며 유흥을 만끽하는 생활을 유지하려는 남편과 '우리'로서 좀 살자는 나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결혼생활을 꿈꿨다.
이렇게 다툼이 쌓이고 상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어떻게든 변하게 만들려고 했다.
"아무튼 이혼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풀릴 거야."
고칠 수 없는 것들을 고칠 수 있다고 믿으며 넘기고 넘겼던 문제들이 결국 우리 사이를 갉아먹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
사주는 하나의 가능성을 말해줄 뿐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이혼수가 없다는 말이 결국은 내가 참고 살게 될 거라는 걸 뜻하는 걸 알았더라면.
그리고는 생각했다. 운명이 내게 주어진 대로만 흘러가야 한다면 인간에게 선택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사주에는 이혼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믿기로 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혼이 예정된 운명은 아니었지만 내가 내린 선택이 새로운 운명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이제는 운명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