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선물이라고? 모두 속지 마시라.

한 발 늦은 영화 이야기 - [영화] 컨택트를 보고

by 바람꽃 우동준

조금 늦었지만 영화 컨택트를 보고 난 후의 개인적인 생각을 남긴다.

지금쯤이면 모든 스크린에서 막을 내리고, 곧 iptv에서 볼 수 있을 테니 굳이 스포주의란 말을 붙이진 않는 거으로.


영화의 간단한 줄기는 이렇다.

1) 한 언어학 박사가 있다. 이름은 루이스.

2)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이 콘택트렌즈 같은 오목한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불현듯 지구에 나타난다.

3)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쟤네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너희의 목적은 무엇인지, 쉽게 말해 너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인간들은 파악할 수 없다. 혼란에 빠진다.

4) 이때 주인공 버프를 받은 박사, 루이스만이 외계인과의 소통에 성공한다.

5)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던 지구의 다른 국가들은 외계인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행성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역시 주인공 버프를 받은 박사가 미래에서 중국의 장군을 만나 극적으로 전쟁을 멈춘다.

6) 외계인은 떠나가고 평화는 찾아온다. 외계의 언어를 배운 박사 루이스는 이로써 저명한 외게 언어 전문가가 되고 평생직장이 보장된다. 그렇게 지구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의 언어도 함께 존재하게 된다.


e0121262_588aca8f94914.jpg 아무리 봐도 우주선이 컨택트 렌즈 모양이다




1. 시간의 굴레. 기준은 과연 어디인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고, 중간중간 루이스의 시점으로 현재와 미래가 스토리가 혼재되며 2시간의 러닝타임이 지나간다. 영화 안에서 시점을 알려주는 지표는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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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딸 한나이다.




쉽게 말해

루이스와 한나가 함께 하는 모습은 미래이고,

루이스 혼자 외계인과 소통하는 모습은 현재이다.


혹은 반대로


루이스와 한나가 함께 하는 모습이 지금이고,

외계인과 소통하는 모습이 과거일 수도 있고.



이처럼 영화는 시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남기지 않은 채 독립된 이야기를 동시에 펼쳐나간다. 처음에 난 영화를 보며 대체 기준이 어디냐며 현재의 시점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루이스의 대화로 인해 필요가 모두 사라졌다.



"한나는 바로 읽어도 한나고, 거꾸로 읽어도 한나야."


H-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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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있어 유일한 기준이 되는 한나를

어디에서 어디로 읽어도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루이스와 한나가 함께 있는 순간을 미래로 바라보든 과거로 바라보든 그건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루이스는 내게 말했다.





"영화에 집중해요. 더 이상 시점은 중요치 않으니."








a0007296_5136ddcc6dc6c.jpg '아차 그렇구나'








2. 루이스는 정말 이안을 사랑했을까


컨택트엔 또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이 있다. 이름은 이안.


636142016414277907-soyld04312069r.jpg 잘생겼얼


루이스는 언어학자고

이안은 수학자다.


루이스는 외계인으로부터 언어를 이끌어내었고, 이안은 원형의 언어에서 패턴을 찾아낸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하나의 언어로 전달되는 것처럼 이안과 루이스도 각각 자음과 모음이 되어 인간의 언어를 외계의 존재에게 전달하였다.


대개의 러브스토리가 그런 것처럼 처음에는 툭탁툭탁 하다 거대한 사건을 함께 해결하고 이들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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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분명 루이스가 보는 미래에서 이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한나와 루이스뿐이었던 그 미래에, 어느 순간 뜬금없이 이안이 나타난다.


그렇게 나의 아이 한나와 함께 있는 아빠의 이안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부부로서의 이안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루이스는 이안과 포옹을 나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고통을 겪을 걸 알면서도 한나를 선택하고, 이안을 선택한 그 용기 혹은 그 사랑에 감동을 받은 것 같지만 나는 기분이 영 찜찜했다.


아무리 봐도 루이스가 이안을 사랑해서 선택했다기 보단 한나를 더 사랑해서 선택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를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와 사랑을 나눌 사람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사랑의 연장으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난다.



그러나 루이스는 한나를 먼저 보았다.

사랑하는 한나를 보았고, 사랑하는 한나를 잃었다.



무언가 순서가 바뀌었다.

루이스는 한나를 사랑해서 한나를 선택했고, 한나를 선택했기에 이안도 선택되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확실한 고통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여준 루이스의 사랑이었다 칭하지만


나는 루이스를 위해서도 이안을 위해서도 왠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뚜렷이 설명할 순 없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3. 경험된 것을 우린 - 과거라 칭한다.



과거(過去)

현재를 기준으로 그 전의 시간이다. 이미 발생한 것으로 미래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경험된 시간은 과거와 같다.

우린 경험했던 시간, 경험했던 체험, 경험했던 순간을 과거라 칭한다.



루이스는 미래를 경험하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분명 미래에 닥칠 일이지만, 루이스는 아주 생생히 미래의 사건을 경험하였다.


그럼 이제 루이스에게 미래는 여전히 미래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경험된 과거가 되는 것일까?




나란 존재는 과거의 총합이다.

지금의 난 지나왔던 시간들의 총합이란 이야기이다.



그런데 루이스는 미래를 경험했다.

이제 루이스란 존재는 언어학자인 동시에 한나의 엄마로서의 총합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루이스가 한나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난 이건 선택이 아니라 그 외의 모습이 모두 소거된 것이라 생각한다. 루이스는 지금 엄마가 아니지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한나와 함께 있는 것이 이미 루이스 그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선택 그 외의 것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마치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루이스도 경험한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이미 내가 그곳에 생생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루이스는 갇혀버렸다.








루이스에겐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오직 경험된 사건의 확인이고 반복일 뿐이다.


영화에선 언어를 통해 세상을 사고하는 방식을 배운다고 했고, 그렇기에 인간이 아닌 외계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시간의 지평이 넓어지고 사고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외계의 존재는 이걸 '선물'이라고 칭한다.






늘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은 선물을 주었다.


미대륙을 처음 밟은 콜럼버스도 그랬고

호주를 밟은 네덜란드인들도 그랬고

임진왜란 전 통신사를 통해 선물을 전한 일본도 그랬다.


난 경험적 확신으로 인해 이질적 존재가 내미는 '선물'을 믿지 않는다.



외계의 존재들은 둥글게 돌아가는 언어를 선물이라며 주었고

우리의 다가오지 않은 미래도 둥글게 돌아 현재가 되었다.


present 선물이자 현재.


그들은 말 그대로 선물로 끝없는 현재를 주고 떠났다.





영화의 중간중간 그리스도 신앙적 요소가 많이 나왔다.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와 숫자가 같은 전 세계에 퍼진 12개의 모선. 외계인이 나타난 것을 보며 종말이 다가왔다고 집단 자살을 택한 신도들의 뉴스. 그리고 3천 년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외계인의 메시지.



하늘의 언어, 초월적 언어가 던져지며 많은 서평의 주제가 '언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나는 언어는 도구일 뿐, 이질적인 존재와의 만남 앞에서 그 이질적인 존재가 상상케 하는 미래와 우리가 맞이할 진짜 미래와의 간극에 더 집중하였다.


이질적 존재가 그려주는 미래, 이질적 존재가 약속하는 미래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이질적 존재를 대상으로 우리가 직접 그려가는 미래에 있다.




하나마나한 가정을 하나 해보도록 하자.



만약 시간이 지나서 루이스가 강렬하게 보았던 한나가 아닌 다른 아이가 태어났다면 과연 루이스는 그 실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루이스는 지금 눈 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

아주 생생히 체험했던 한나와의 경험 중 무엇을 더 실재라고 받아들이게 될까.


아니 루이스는 무엇을 더 현재라고 믿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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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원은 언제나 불확실성으로부터 온다



나 또한 신앙이 있지만 확실한 미래를 내게 보여달라며 기도하진 않는다.

내가 그리는 안정적인 미래라고 해봤자 결국 인간이기에 그 상상의 한계가 명확할 테니 말이다.


나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그 모든 도전과 선택이 위대할 수 있는 건 어느 것도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고, 그 결과가 위대해질 수 있는 건 불확실함을 뚫고 당당히 달성한 결과이기에 위대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의심하며 보았고 그래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지금 너무나 불확실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내 미래도 안정적이지 않고, 지금의 행복이 언제 그칠지도 확실치 않다.

불확실함을 벗어날 수 없어 고통이 반복된다 생각했으나

영화를 보며 이 불확실함 속에야만 나의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느낀다.


나는 정말 선물을 받았다.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미래, 온전히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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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될 수 있다며, 이걸 먹으면 신이 될 수 있다며 무한한 권능함을 그리게 했던 존재가 있다.


불확실성 속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베어문 것은 구원으로 향하는 시작이였으며 위대한 선택과 위대한 삶의 시작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건 고통이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고통이다.


확실하지 않은 건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이미 다가와있다.


컨택트의 원래 이름은

Arrival 이다.


도착. 이미 다가와 있는 것.



이미 다가온 것을 경계하며

불확실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는 구원을 기다려본다.









영화를 보고 바로 글을 쓰려했는데 시간이 없어 미뤘더니

이젠 영화가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올레에 뜨면 다시 봐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