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ure entre chien et loup
당신은 지금 숲 속을 걷고 있어요. 한참을 걸어왔죠. 어둡고 축축한 늪지대를 건너와 지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레드우드의 숲 속으로 들어왔어요.
이 곳에서 당신은 몇 명의 사람이 손을 뻗어도 안아지지 않을 아주 굵은 줄기를 가진 한 나무를 보게 되고, 그 나무 뒤에 서있는 아주 어두운 털을 가진 붉은 눈의 짐승과 만나게 됩니다.
당신은 검은 짐승의 실루엣을 보며 추측하기 시작하죠.
네 발.. 길고 날렵한 코.. 쫑긋 솟은 귀.. 처진 꼬리....
늑대인가..? 개인가..?
늑대라면 당신은 지금 당장 전투태세에 돌입해야 합니다. 무리를 이루는 늑대의 특성상 이 숲 속에 저 짐승 하나만 있진 않겠죠. 지금도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 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늑대 떼를 만났으니 이 곳은 아주 깊은 숲 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도 장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혼자입니다.
개라면 당신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사람이 사는 곳과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죠. 혹은 사냥을 나온 사냥꾼의 개일 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저 개 또한 꼬리를 흔들며 날 반겨줄 테니 이런 숲 속에서 경험하는 생명의 반겨줌은 아주 좋은 힘이 될 테죠. 더 이상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보기에 이 짐승은 무엇인가요. 아니 지금 당신의 시간에서 이 짐승은 무엇인가요.
당신에겐 개인가요?
아님 당신에게 이 짐승은 늑대인가요?
당신은 당신을 잘 아나요.
저는 저를 잘 몰랐어요.
몰랐답니다.
우리의 내면이- 우리의 의식이- 아주 깊숙이 감춰왔던 나의 본모습과
처절히 직면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건 다른 사람과 만날 때랍니다.
우린 언제나 다른 사람과 만날 때에
감추었던 나를 만나게 돼요.
다른 사람을 만나면 -
나를 만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통해- 늘 두 명의 사람을 동시에 마주하게 됩니다.
내 앞에 있는 당신과 나조차도 미처 몰랐던 나.
이렇게 두 명 말이죠.
개와 늑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늪지대를 건너 빛이 들지 않는 레드우드의 영역으로 들어온 한 여행자에게 반가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보기도 하고, 위험과 전투태세에 들게 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신도 개와 늑대의 시간을 보냅니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늪지대를 건너 빛이 들지 않는 레드우드의 영역으로 들어온 한 여행자가 당신으로 인해 반가움을 느끼고, 위험과 전투태세에 들기도 합니다.
우린 이렇게 함께 - 개와 늑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heure entre chien et loup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과 악도 모두 붉을 뿐이다.'
우린 모두 선이었고
동시에 우린 모두 붉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영광의 시간을
감히 이렇게 명명해 봅니다.
"그 시간은 내 삶의 지평에서 영원히 기억될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고"
이렇게 또 하나의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무한한 감사와 축복을 그대에게 전합니다.
우린 이제 다시 각자의 걸음으로 이 숲 속을 걸어가겠지만 어두운 숲 속에 나 혼자만 있지 않다는 그 사실이 매일 밤 우릴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할 것입니다.
해 질 녘이 아닌 중천에 해가 높게 떠 세상을 모두 빈틈없이 밝히는 날
우리가 다시 만나길 바라봅니다.
그 날의 시간은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