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
나와 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신부님이 계신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한 것도 아니었지만 신부님은 진심을 다해 우리를 응원해주셨고, 도와주셨다. 서울의 중요한 언론들에 우리의 활동을 소개해주셨고, 직접 도서와 노트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도 신부님께서 직접 추천하며 보내주신 책이다. 서평을 쓰며 우리를 향한 관심과 좋은 도서를 추천해 준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작가는 9월을 말한다. 특별히 미국에서 일어났던 9·11 테러를 말한다. 작가에게 9월은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비극의 기억'이고, 둘은 세계에서 이어지는 '비극의 확장'이며, 셋은 미래를 희망하는 '비극의 직면과 전복'이다.
댐이 곧 현대 인도의 사원이라고 말한 네루의 연설은 인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어린 시절부터의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인도 사람들에게 대형댐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옹호되어야 하며,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아이들은 거대한 댐들이 인도 사람들을 굶주림과 빈곤으로부터 구제해줄 것이라고 배우는 것이다. - 1장 홍수 앞에서 中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사람이고, 나는 한국 사람이다.
같은 유라시아 대륙이긴 하나 인도와 한국은 환경, 문화, 정치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겪었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었다.
많은 차이가 있는 두 국가이지만 저자가 담아 둔 인도의 모습과 내가 경험한 한국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만큼 유사하고 두 나라의 이야기는 작가의 글과 나의 체험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인도는 해방 후 네루와 간디로 나뉘어 '대도시 위주의 급속한 성장'과 '마을 위주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국가철학이 양분되게 되고, 결국 네루와 그와 함께하는 이들의 철학이 이기며 곳곳에 대규모 댐이 건설되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목격한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내가 사는 도시 델리는 바로 내 눈 앞에서 변해가고 있다. 자동차들은 더욱 미끈해지고, 담장은 더욱 높아지고, 늙고 병든 야경꾼들 대신에 젊은 무장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그 빈민들의 아이들은 산란한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선글라스를 쓴 특권층들은 그들을 외면한다. 특권층 사람들의 아이들에게는 선글라스도 필요 없다. 그 아이들은 외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지 않는 법을 이미 터득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사랑과 탐욕, 정치와 지배, 권력과 권력의 결여 - 이런 것들에 대해서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장 홍수 앞에서 中
대규모의 댐이 건설되며 마을에는 조금씩 물이 차오른다. 나의 삶의 터전과 기억의 공간에 조금씩 물이 차오른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웃들의 삶과 마을의 비극을 목격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장의 생생한 비극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작가는 작가로서의 사명을 발견한다.
내가 뜻하는 것은 다만 우리가 때때로 책에서 눈을 들어 우리 둘레의 세상 형편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고, 냉방을 하고,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먼 곳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1장 홍수 앞에서 中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식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사람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가수, 영화 제작자들입니다. - 2장 작가와 세계화 中
댐이 곧 현대 인도의 사원이라고 말하는 네루의 모습에서, 난 한국형 녹색뉴딜이란 브랜드를 붙여 4대강에 포클레인과 트레일러의 문을 열어준 이명박 정부를 떠올린다.
영국으로부터의 해방 후 개발 노선을 택했던 인도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일본으로의 해방 이후 '대도시' 위주의 '개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철학의 궤와 함께 했던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대형댐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옹호되어야 하며,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신앙이었다는 아룬다티 로이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도 '국책 사업'은 시민이 희생되고 자연과 생명이 희생되더라도 옹호되어야 하며,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되는 신앙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에게 신앙은 '경제가 좋아지면 모든 일이 함께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 자체이다. 우린 도덕성과 비전도 검증하지 못한 채 나를 부자 되게 만들겠다는 후보를, 나를 찍으면 우리가 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을 한 후보를 선택했다.
경제가 좋아지고, 내가 부자가 되고, 한국이 부자 나라가 되면 다른 일들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그리고 이것이 오늘 내가 마주한 현실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대형 댐의 건설을 마주하며 자신의 책무를 분명히 했다.
나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내가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고 도덕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한 술 더 떠서, 그 입장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2장 작가와 세계화 中
로봇물고기로 수질을 체크하겠다는 보도와, 생태와 환경적이란 환경부의 정책광고, 그리고 각종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의견을 보면서 그저 그 모든 말들을 믿고 싶어 했을 뿐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이
그저 노파심에서 오는 앞선 걱정일 거라 비겁하게 희망했다.
그것이
이 모든 것이 대통령과 전문가들의
잔혹한 거짓말이었단 참혹한 현실보다는
받아들이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시민과 작가로서의 의무에 충실했고, 그에 반해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세계는 자살 폭파범을 비난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걸어온 긴 여정을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요? 1922년 9월 11에서 2002년 9월 11일에 이르는 80년 동안의 전쟁은 너무도 긴 기간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세계가 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 3장 9월이여, 오라 中
아룬다티 로이의 이야기는 '나'에서 '세계'로 확장되어간다. 인도에서 경험한 이웃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이젠 세계의 고통에 대해서도 반응하기 시작한다.
아룬다티가 로이가 미국에서 외쳤을 때는 2002년이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참혹해졌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핍박은 더 심해졌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붕괴로 무장테러단체 IS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시리아에서는 최악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사망자는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00명에 이르고 4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난민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상대적 약자인 아이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이는 부모를 잃고, 안전한 삶터를 잃고, 교육권과 자유를 잃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전쟁과 폭력의 위협은 중동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바로 오늘, 이곳 동아시아에서도 그 위기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와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막기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사드를 들여왔고, 이 과정에서 중국은 자신들에 대한 실질적 감시 레이더라며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북핵 위기에 나서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며 선제타격에 대한 위협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위협과 진행된 것이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화학무기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자 IS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이라 볼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중국과 북한과 한국을 향한 보여주기의 공격이었다.
불행히도 폭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제 세계의 폭력은 바로 내가 있는 곳의 비극과 동시에 시작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에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세계의 또 다른 비극일지 모르나,
나에겐 여전히 나로부터 시작되는 비극의 현장이다.
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싸움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어떤 정부도 우리에게 자유를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자유란 우리 스스로가 정부와 싸워 얻은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자유를 넘겨준 뒤에 다시 자유를 되찾으려고 싸우는 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 모든 대륙에 걸쳐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 6장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문제는 우리의 집단적인 지혜와 투쟁 경험을 활용하여 하나의 목표물에 겨냥할 수 있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이기고자 하는 욕망의 문제일 뿐입니다. - 7장 새로운 미국의 세기
책의 후반부는 비극에 대한 직면과 식별 그리고 전복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룬다티 로이는 '어떤 정부도 우리에게 자유를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집단적인 지혜와 투쟁 경험을 활용하여... 이기고자 하는 욕망의 문제일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번 봄, 처음으로 5월의 대선을 맞이한다.
찬 바람이 불던 지난 겨울날,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년을 통해 짧게 누렸던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우리의 광장은 가로막혔었고 분열의 공포와 자본의 목 조름을 경험했다.
'어떤 정부도 우리에게 자유를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우리도 6월 항쟁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의 항쟁을 통해 이 자유를 쟁취했던 것이다.
'집단적인 지혜와 투쟁 경험을 활용하여... 이기고자 하는 욕망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과 바른 세상에 대한 욕망으로 우리도 변화를 만들어냈다.
아룬다티 로이는 마들렌 번팅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보고 나면, 그걸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본 다음에는 입 다물고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인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로이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분노가 주위 사람들의 작고 하찮은 일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문제로 향해있다는 게 나로서는 좋아요."
부끄럽게도 나는 아룬다티 로이라는 사람을 신부님이 선물해주신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는 본인이 작가-활동가로 규정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작가는 유약한 이미지로, 활동가는 직업적 활동가로의 편견이 들어가 있는 수식어라며 싫어했다.
동시에 그 어떤 것으로 규정되지 않은 채의 활동을 지향했다.
작가는 인도는 노회 한 나라라서 '인생은 돈벌이'다 라는 가치에 세뇌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그 말 앞에 참 부끄럽게도 벌써부터 인생은 돈벌이지 않나라는 고민에 빠져있다.
돈 앞에 한없이 작아져도 봤고, 밥도 굶어봤고, 걸어도 다녔다.
내가 인생은 돈벌이지 않나라고 고민하는 건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보단, 걱정 없이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고 싶다는 꿈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내게 말해준다. 인생은 이웃과 세상의 형편을 바라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내게 말해준다.
나는 아직도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불안에서도 나도 이웃의 안녕과 평화를 꿈꾼다.
나는 아룬다티 로이처럼 곧 겨울이 다가올 9월이 다가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수준에서, 내 불안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곧 여름이 다가올 5월이여, 오라.
아직 겨울이 다가오려면 한참이나 남은
5월이여,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