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그 죄악은 이곳에서 다시 심판된다>

by 바람꽃 우동준

* 영화를 평론하는 글이 아니라 딱히 스포가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신경쓰인다면 뒤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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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2월 25일, 신과 함께


2017년의 크리스마스는 '신과 함께'를 감상하며 보냈습니다. 옛 중동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동방박사가 갔던 걸 기억하는 그날, 저는 염라대왕과 저승의 일곱지옥을 건너는 저승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보낸 것이죠.


어쨌든 지극히 서양적인 날, 지극히 동양적인 신화와의 조합이 헬조선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이루어진겁니다.







01. 신이 함께 한다는 것은-

저는 원작인 파괴왕의 웹툰을 보지 않았던터라 하정우가 1인 2역을 하든, 지옥의 묘사가 부족하든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난 처음 보거든!!) 영화를 예매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그 영화 재미없다더라-' '한국영화 특유의 억지 신파가 너무 많다'- 등등 하도 많은 우려를 표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죠. 그건 바로 이미 전문가의 호평일색이었던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에 크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지. (난 단련되었어. 적어도 이 영화에 로즈와 핀의 키스신은 나오지 않잖아)



그렇게 마주했던 영화는 꽤나 재밌었다. 나름 생각하게 하는 지점도 많았고, 연말을 마무리하기에 아주 적절했던 영화랄까.






02. 신이 함께 한다는 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정해놓은 장치는 여럿 있었지만 나는 그런 의도적 장치보다, 저승차사가 일곱개의 그 재판을 함께 한다는, 스토리의 아주 기본적인 설정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승에 살며 다양하게 저지르는 잘못들과 죄악, 혹은 실수들에 대해 누군가가 변호해준다는 것이-

왜 그렇게 감동적이었을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기도 한 크나큰 명제-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죄악을 짓는다>가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자, 이 영화를 관통하는 아주 간단한 철학이다. 그리고 <그 죄악은 이곳에서 다시 심판된다> 또한 영화가 던지는 주요한 메시지다.



그럼 이 죄악은 대체 무엇이며 죄악이라 판단하는 기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개인의 양심일수도 있고, 국가의 헌법일수도 있으며, 천륜이라 일컬어지는 사회공동체의 문화적 규범일수도 있다. 그렇게 이곳 이승- 나의 행동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기준이 놓인 상태에서 ,한 개인은 언제나 죄악과 선행의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시에 이곳의 모든 선택은 최종 행위의 결과로서 죄악이냐 아니냐가 판단된다. 가령 불을 끄기 위해 불법주차한 차량을 파손하고 진입했을 시 최종행위의 결과인 차량파손의 죄를 소방관에게 묻는다던지, 집에 침입해 사랑하는 이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범죄자를 방어하다 큰 상해를 입혔을 시, 최종행위의 결과인 상해의 죄를 물어 폭행죄를 묻는 다던지, 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동한건 항로로 인정하지 않아 항로변경의 죄를 묻지 않는다던지, 성적 폭행을 방어하고 이를 고발했을 시 최종행위의 결과가 뚜렷하지 않아 성범죄로 판단할 수 없다던지와 같은.



신이 함께 하지 않는 이상- 마치 나는 전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한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모두 거세하고 최종행위로만 판단하는 이승의 재판과 달리 이 영화에서 표현된 저승의 재판은 그렇지 않았다.


신이 주인공의 생과 함께 했기에, 그 행동이 나오게 된 그만의 배경, 그의 감정, 그 이후 그의 변화, 회개까지 생의 전체를 하나의 판에 올려두고 그 행위를 심판할 수 있었다. 물론 악인의 경우 그가 제대로 회개했는지- 그 배경에 다른 악의는 없었는지도 함께 파악하며 영원한 얼음에 가두기고 하고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 난 이 '신과 함께'란 짧은 조합이 좋아졌다. 신이 나와 함께 한다는 이 상상이 좋아졌다.

삶으로 수식되는 이 모든 선택의 과정에 신이 함께 하고, 이 과정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줄 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지금의 선택에 숨겨진 진짜 욕망이 뭔지 함께 하는 신이 알기에- 더 겸손되기도 하고.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그 고민 과정에 신이 함께 한다는 믿음은- 염라로 통칭되는 동양의 신화와 다르지 않다.



이처럼 물리적 거리가 상당한 두 지역의 신화가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건-

신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 주는 이 위안이야말로,

믿는 이들이 간절히 바라왔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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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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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oodongjoon.com/22 [우동준의 어제와 같은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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