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나쁘다, 아주 나쁘다

by 바람꽃 우동준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세상을 떠난 故 종현님의 기억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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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씨의 발인이 지난 21일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뉴스기사를 통해 그를 사랑했던 많은 팬분들과 동료들, 그리고 가족분들의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 속에서 아래의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칼럼]자살은 나쁘다, 아주 나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01326001



며칠 전 한 유명가수가 사망했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 바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가수는 나쁘다. 자살이란 최악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쁘다. 앞으로 그의 가족들은 물론 그를 좋아했던 팬들도 슬픔과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불행만을 더해주고 떠났다.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관심 없다. 그가 친구에게 남겼다는 유서 따위도 보고 싶지 않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은 그에게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한다. 또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왜냐하면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보도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널리 퍼지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은 그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 기사는 20일 작성되었습니다. 발인이 끝나기도 전, 그러니까 종현씨가 사망하고 이틀 뒤에 이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고 아주 나쁜 기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배려와 공감이 사라진 기사



우리 시대의 안타까운 사고 앞에 기자와 기사의 배려없는 태도와 질문은 여러차례 문제가 되어왔다. 특히 사고의 원인과 배경이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개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부각시켜 유가족을 언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행태, 간단히 사고에 대한 소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난무하며 유가족이 고인을 보내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잔인한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번 故 종현의 사망소식과 이후 기사도 마찬가지고 특히 위의 링크한 기사는 종현의 사망에 대한 가치판단과 사회적 의미까지 넘겨짚는다. 그러다 결국엔 그의 죽음이 나쁘며, 사회에 불행만을 남기고 떠났다는 작의적 해석까지 이르게 된다. 기자의 문제의식은 이러하다.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 불리는 사회현상이 있으며 자살을 택한 종현이 유명인이기에 그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회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능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청소년이 예민할텐데 어쩌면 좋으냐며 걱정하는 복지부 담당자의 걱정도 첨부했다.



그럼 유가족은 어떠한가?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어떠한가?



기자는 아주 당당하게 그가 친구에게 남긴 유서 '따위'라는 말을 써가며 마치 추호도 그의 죽음을 동정하지 않겠다는 듯 종현의 마지막 메세지를 보지 않았다 말하지만 그 유서를 보면 종현이 살아 생전 얼마나 외로워하고 괴로워했는지가 나온다. 위의 복지부 담당자가 수능이 끝나 예민하고 힘들어한다던 그 시기의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외로움을 보듬아주었던 이가- 그토록 많이 외로웠다고 고백하는 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데도 말이다.


그는 그의 죽음이 미칠 '베르테르 효과'를 걱정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보낸 유가족이 그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실제로 故 종현이 살아생전 작사-작곡한 노래들이 재조명되며 그의 외로움을 미리 알고 위로가 되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팬들의 글이 온라인에 넘치고 있다.



이제 기자에게 묻고 싶다.

이 기사는 유가족과 팬들에게 더 큰 죄책감과 아픔을 주는 기사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기자가 걱정하는 사회에 유가족과 그를 사랑한 팬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신중 보단 시점이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언론이 아예 자살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유명인의 죽음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만 빼먹을 수도 없다. 차선책은 보도를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악영향을 없애는 것이다.




기자는 자살 보도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사를 전하는 시점이다. 이 기사는 故 종현의 발인이 하루 전에 보도되었다. 유가족과 팬들이 그를 위해 슬퍼할 충분한 시간조차 이 기사는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베르테르 효과'에 가장 영향을 받는 건 어쩌면 그를 애도하는 팬들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속보' 라는 이름으로 붙은, '단독'이라는 이름이 붙은, '현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야만적인 기사와 소식을 접한다. 단순한 사실보도 이상의 내용을 담은 기사는 그 기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시민의 알권리는 사실과 현상에 대한 담담한 전달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고와 사건에 담긴 배경적인 내용은 깊은 내용조사가 따른 후, 최소한 고인의 발인이 끝난 후라도 늦지 않는다. 그동안 더 깊이있는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기사에 나쁘다는 말을 붙인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자는 고인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보길 바란다.

그 후 자신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글쓴이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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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oodongjoon.com/21 [우동준의 어제와 같은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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