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우체통》의 글귀걸이

조원 시집 《슬픈 레미콘》

by 바람꽃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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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천 번쯤 감사 기도를 올려도 감사팀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수천 명의 직원에게 깍듯이 인사해도 절대 인사팀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여태 인사하고 감사한 너희가 왜 이곳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지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고요의 이불을 폭닥하게 덮은 저녁, 노란 스탠드를 켠 채 오늘도 얇은 시집을 펼쳐 나의 코드와 시인의 코드를 맞춰봅니다. 시라는 게 원래 이랬던 걸까요. 오늘은 좀 밝은 글을 써보겠다 다짐했지만 역시 눈길이 멈추는 곳은 나와 같은 결을 가진 문장일 뿐이고, 벗어나려 몇 장을 더 넘겼지만 마음은 이미 자음과 모음의 콩밭으로 가버렸습니


나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오늘 이 구절에 멈춘 걸까요. 당신에게 전하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나에게 전하고 싶어서일까요. 어떤 답을 찾고 있기에 이 글귀만 곱씹고 또 곱씹고 있는 걸까


어쩌면 하느님께 드린다는 감사기도에. 수천 명의 직원에게 한다는 깍듯한 인사에 뭉클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기도의 심정, 되돌려 받지 못할 무한의 인사가 정확하겠네요.


노동의 값이 곧 우리의 값은 아닌 거겠죠. 기도의 대답이 더 높은 값의 종이뭉치로 되돌아오진 않는 것이 슬플뿐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야겠습니다. 그 인사와 감사를 서로에게 되돌려주는 것부터 하나씩 시작해 나가야겠습니다.



조원 시집 《슬픈 레미콘》 중 <벌집 우편함>의 글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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